1. 2007/07/15 이제 '월드컵 박사'가 다 된 울 엄마 (1)
  2. 2007/07/14 출전 사상 최초로 조 최하위 면한 월드컵 (1)

이제 '월드컵 박사'가 다 된 울 엄마

e s s a y 2007/07/15 15:24 posted by 곱씹다

우리 가족의 추억이 담긴 2006독일월드컵을 보내며



어버이날을 앞두고 여느 자식들처럼 고민에 빠졌다. 매년 부모님은 어버이날 며칠 전부터 내게 쓸데없이 뭐 살 생각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하셨지만 또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것이 자식 마음 아닌가. 그래서 그나마 주머니 사정이 넉넉할 땐 카네이션과 속옷, 넉넉하지 못할 땐 카네이션만 달랑 사드리곤 했는데 이젠 레퍼토리를 바꿔보고 싶었다. 그러던 차에 생각난 것이 얼마 전 부모님의 대화였다.


"이번 월드컵엔 우리도 ‘붉은 악마 티’ 사야지?"

"며칠 전에 마트에서 보니까 9천 원에 팔던데…."


그렇게 어버이날 선물을 결정하고 붉은 악마 티셔츠를 사고자 냉큼 상경 길에 올랐다. 부모님에게 사드리는 것이니 만큼 마트에서 파는 9천 원짜리 티셔츠보단 우리 동네에는 없는 모 의류사의 티셔츠를 사고자 했기 때문이다.


아버지, 어머니의 사이즈에 맞는 것으로 고르고 '내 것도 사야 하는 건가' 하는 고민에 잠시 망설였다. 도통 단체복을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라 2002년에 그랬듯 이번 월드컵에도 붉은 악마 티셔츠를 입을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월드컵엔 아버지, 어머니가 입고 계실 것이 아닌가. 두 분이 나란히 붉은 악마 티셔츠를 입으신 모습을 상상하니 도무지 나만 빠질 수 없었다. 결국 내 것까지 세 장을 샀다.


집으로 돌아와 세 장의 티셔츠 꺼내놨고 부모님의 반응을 기다렸다. 그런데 웬걸 지금껏 보지 못한 부모님의 반응이 이어졌다.


"야, 안 그래도 올해는 꼭 한 장 얻어 입어야지 했는데."

"이거 비싼 거 아니야? 예쁘긴 예쁘네."


월드컵에 우리 가족의 추억을 담기로 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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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가족의 붉은 악마 티셔츠. ⓒ 이덕원

그렇게 월드컵을 즐길 준비를 마치니, 어느덧 월드컵 개막일이 코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사실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혼자 고민 아닌 고민에 빠져 있었다. 한국의 경기는 최소 세 번. 마냥 설레기만 해야 할 때인데 나는 그 세 경기를 누구와 볼 것인가 하는 다소 엉뚱한 고민을 하고 있던 것이다.

광화문에서 함께 거리 응원하자는 여자친구, 찜질방에 모여서 응원하자는 고교동창들, 자취방에서 족발에 소주 한잔 걸치며 응원하자는 대학동기들.


하지만 작은 텔레비전 화면으로 집에서 단출하게 보실 부모님이 자꾸 마음에 걸렸다. 간접프리킥이 뭐고 직접프리킥이 뭔지, 페널티킥은 뭐고 오프사이드는 뭔지 가르쳐주신 부모님이 마음에 걸렸다. 어쩌면 무심하게 주무시는 어머니를 옆에 두고 아버지는 홀로 축구경기를 시청하실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결국, 나는 가족과 함께 월드컵을 즐기기로 했다. 사실은 부모님과 함께 봐야 더 재밌게 볼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아버지만큼 나와 축구경기를 보는 시각이 비슷한 친구도 없고, 어머니만큼 현장감 넘치게 소리 지르며 보는 여자친구도 없으니.


월드컵의 막이 오르고 한국의 토고전, 프랑스전, 스위스전이 이어졌다. 응원을 하며 먹을 간식으로 준비한 족발은 뒤로 한 채 노심초사 경기를 보던 토고전, 그 어느 때보다 어머니가 현장감 넘치게 환호한 프랑스전, 경기가 끝나고 부모님과 함께 심판의 편파판정에 대한 울분을 삼키지 못한 채 술만 마신 스위스전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월드컵 박사가 다 된 울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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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일, 결승전을 보시는 어머니. ⓒ 이덕원

불행히도 한국의 경기는 최소한으로 주어진 세 번에 그쳤다. 그리고 나는 토너먼트부터 월드컵 경기를 시청할 수 없었다. 물론 한국과 스위스의 경기에서 심판의 편파판정에 월드컵에 대한 정나미가 떨어지기도 했지만, 모 회사 인턴생활을 위해 상경해 일과에 바쁘다 보니 보고 싶어도 볼 수 없었다.


그렇게 토너먼트 경기를 놓치고 있던 차, 집으로 내려간 나는 그동안 월드컵 경기를 시청했을 아버지에게 각 경기의 내용을 물었다.


"네 엄마한테 물어봐, 아주 월드컵 박사가 다 됐어."


아버지의 말이 끝나자마자 어머니의 말이 이어졌다.


"거봐, 내가 프랑스가 잘할 거라고 그랬지? 포르투갈에 걔(크리스티아누 호날두)는 보면 볼수록 잘 생겼더라. 참, 루니 걔는 애가 정말 못 됐더라."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버지만 간간이 관심이 있는 경기를 골라 보고, 어머니는 한국이 16강에서 탈락했으니 관심 밖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버지의 말처럼 어머니는 월드컵 박사가 다 된 듯 경기내용부터 선수까지 줄줄이 외고 계셨다.


우리 가족의 추억이 담긴 월드컵을 보내며


월드컵 결승전이 있었던 오늘(10일) 새벽, 이번 월드컵의 마지막 경기를 보고자 알람을 맞추고 잔 나는 정신없이 자다가 경기가 끝나갈 즈음에서야 눈을 떴다. 그리고 방문 사이로 들어온 한줄기 빛을 보고 나간 거실에서 나는 다시 한 번 놀라고 말았다. 어머니가 경기를 보고 계신 게 아닌가. 그런데 이어진 어머니의 말이 더욱 놀라웠다.


"오늘 지단 컨디션이 별로네, 경기는 프랑스가 더 잘했어."


어머니는 경기를 처음부터 쭉 보고 계셨다고 한다. 그리고 잠시 후 '지단'이 홧김에 상대 선수를 머리로 들이받고 퇴장당하자, 이에 어머니와 나는 흥분하기 시작했다. 또 이 때문에 아버지도 잠에서 깨 경기 시청에 합류하셨다.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결승전은 1대 1의 공방 끝에 연장전에 접어들었지만, 연장을 통해서도 승부를 내지 못했다. 결국, 내가 아침 첫 차를 타고 상경해야 하는 탓에 아버지와 난 승부차기를 보지 못하고 터미널로 향해야 했다.


터미널로 가는 길, 라디오를 통해 들은 승부차기의 결과는 5대 3으로 이탈리아의 우승이었다. 아마도 홀로 집에서 승부차기를 지켜보던 어머니는 늘 잘 생겼다던 프랑스 선수 '트레제게'의 실축에 안타까워하셨을 것 같다.


2006독일월드컵, 훗날 돌이켜보면 이러한 우리 가족의 추억이 알알이 담겨 있을 것이다.

이덕원


- 덧붙이는 글 -

2006년 7월10일 작성.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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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전 사상 최초로 조 최하위 면한 월드컵

c o l u m n 2007/07/14 23:53 posted by 곱씹다
생애 첫 월드컵을 맞은 꿈나무에게 희망을…


 

사람마다 생애 처음으로 본 월드컵이 있을 것이다. 물론 갓난아이 때부터 부모 품에 안겨 월드컵을 맞이했겠지만 정작 기억하는 것은 소년, 소녀일 적 맞이한 월드컵이다. 이 때문에 한국 최초로 세계축구 무대에 발을 내디딘 1954년 스위스월드컵을 처음으로 기억하는 어르신에서부터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신화를 처음으로 기억하는 어린아이까지, 연령대에 따라 '첫 월드컵'은 다를 것이다.


소년, 아버지에게 축구를 배우다


20대 중반인 내가 기억하는 생애 첫 월드컵은 '도하의 기적'을 연출하며 극적으로 본선에 진출했던 1994 미국 월드컵이다. 내가 기억하는 생애 첫 축구경기도 11살 적에 본 한국 대표팀의 미국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경기다. 당시 우리 대표팀의 상대는 어느 중동국가였다고 기억할 뿐이다. 하지만 경기가 있던 날 밤늦은 시간까지 가게 문을 닫지 않고 텔레비전 앞에서 노심초사 경기를 지켜보던 아버지 모습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 또 그런 아버지 옆에서 오프사이드가 뭔지, 페널티킥이 뭔지 축구 경기 규칙을 처음 배웠던 기억도 새롭다.


1994년 6월 드디어 미국 월드컵이 열렸고 3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을 달성한 한국대표팀은 '디펜딩 챔피언' 독일, '무적함대' 스페인, 남미예선에서 돌풍을 일으킨 볼리비아와 한 조가 되어 경기를 치러야 했다. 그런 만큼 숙원의 16강 진출을 달성하기 위해 가야 할 길은 멀고도 험난했다. 유난히도 무더웠던 여름, 한국 대표팀의 선전을 바라며 이른 아침에 일어나 텔레비전 앞에 앉아 부모님과 함께 응원했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내 생애 첫 월드컵, 1994 미국 월드컵


한국의 첫 상대는 스페인이었다. 한국은 전반 25분 스페인 수비의 핵 나달이 퇴장당하며 수적인 우위를 점한 채 기대 이상의 선전을 펼쳤지만 스페인의 수비를 뚫지는 못했다. 그러다 후반 들어 살리나스와 고이코에체아에게 쉽게 연속골을 내주며 패색이 짙어갔다.


그러나 경기 막바지에 이르러 한국 대표팀은 아시아 축구 맹주의 저력을 과시했다. 후반 40분 홍명보의 프리킥이 스페인 수비수의 발을 맞고 골네트를 흔든 데 이어 후반 44분 서정원이 홍명보의 패스를 받아 페널티 지역 오른쪽에서 동점골을 터뜨린 것이다.
경기 결과는 2-2 무승부. 강호 스페인과의 경기에서 승점 1을 챙긴 한국은 그나마 약체로 평가된 볼리비아를 꺾으면 첫 월드컵 16강에 진출할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설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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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4 미국 월드컵 스페인전에서 동점골을 넣고 포효하는 서정원 선수 ⓒ 서정원 팬 페이지 '날쌘돌이'


한국은 조별리그 두 번째 상대로 남미지역예선에서 의외의 선전을 펼치고 출전한 볼리비아를 만났다. 한국은 볼리비아를 월드컵 첫 승 제물이자, 월드컵 16강 진출의 발판으로 삼고자 경기 내내 파상공세를 펼쳤다. 그러나 황선홍이 수차례의 기회를 놓치며 골문은 쉽사리 열리지 않았다. 결국, 한국은 고질적인 골 결정력 부족으로 볼리비아와 득점 없이 비기며 다시 승점 1점을 추가하는데 만족해야 했다. 이에 따라 마지막 경기에서 독일과 최소한 비겨야만 16강을 바라볼 수 있었다.


한국은 조별리그 마지막 상대로 볼리비아에 이기고 스페인과 비기며 1승 1무를 기록 중인 독일을 만났다. 독일은 이미 16강 진출이 확정됐지만 조 1위를 차지하기 위해 경기 초반부터 한국을 몰아붙였다. 전 대회 우승국은 역시 강했다. 전반 11분 독일의 간판 골잡이 위르겐 클린스만에게 선제골을 내준 한국은 전반 18분에 리들레, 전반 35분에 클린스만에게 다시 골을 내주며 0-3으로 끌려갔다.

전반에만 3골을 내주며 자존심을 짓밟힌 한국은 후반 들어 배수진을 친 듯 독일에 맹공을 퍼붓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한국은 후반 7분 박정배의 패스를 받은 황선홍의 골에 이어 후반 18분 홍명보의 중거리 슈팅이 들어가며 2-3으로 좁히는 데 성공했다. 독일을 한 점차로 뒤쫓은 한국은 남은 30여 분 동안 총공세를 펼치며 체력적으로 지친 독일을 몰아붙였지만 끝내 동점골은 터지지 않았다.

한국의 조별리그 최종 결과는 2무 1패 승점 2점. 한국은 조 3위 6개국 중 4개국에 주어지는 와일드카드로 16강을 기대하기도 했지만 접전이 있었던 조가 많아 결국 16강에 오르는 데 실패하고 말았다. 


16강 좌절, 소년은 이불 속에서 눈물을


독일전이 끝나고 소년은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이불을 싸매고 꺼이꺼이 울다 지쳐 잠이 들었다. 한국은 쉽게 골을 허용하고 어렵게 골을 넣어 만회하곤 했지만 결정적인 순간 그 이상은 없었던 것이다. 너무나 아쉬운 패배였기에 더 가슴 아픈 월드컵이었다. 볼리비아전에서 수차례의 기회 중 단 하나만 골로 연결되었더라면, 체력을 소진하고 한국의 총공세에 쩔쩔매던 독일과의 경기에서 시간이 조금만 더 있었더라면 하는 생각에 아쉽고 분하기만 했다.


그리고 나는 조금 더 나이가 들고서야 한국이 미국 월드컵에서 월드컵 출전 사상 최초로 조 최하위를 면했다는 것을 알았다. 실제로 소년이 미국 월드컵에서 본 한국대표팀의 경기는 이전 수차례 출전했던 월드컵에서의 경기보다 결과는 물론이거니와 내용 면에서도 가장 좋은 성적이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미국 월드컵 당시 처음 월드컵을 본 소년은 한국이 세계축구의 변방이라는 사실을 알 리가 없었다.


불굴의 투지로 한국의 희망 온전히 보여 달라


내 생애 첫 월드컵은 이토록 가슴 아팠다. 하지만 나는 미국 월드컵에서 한국이 축구 강호들과 당당히 맞서 싸우는 불굴의 투지를 봤다. 한국이 언젠가는 세계축구의 중심에 우뚝 설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본 것이다. 그리고 8년 후 한국이 2002 한·일 월드컵에서 온 국민의 숙원이었던 1승은 물론 16강을 넘어 4강 진출까지 달성하면서 마침내 희망은 열매를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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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서 열린 가나와의 친선경기 직전 포즈를 취한 한국 대표팀 선수들 ⓒ 독일월드컵 공식 홈페이지


이제는 2006독일월드컵이다. 다시 새로운 도전의 문이 열린 것이다. 국민은 이번 월드컵에서 한국이 한·일 월드컵 4강 신화를 재연하기를 염원하지만 우려의 목소리도 높은 것이 사실이다. 개인적으로 많은 것을 바라지는 않는다. 다만 미국 월드컵을 보던 나처럼, 이번 2006독일월드컵을 생애 첫 월드컵으로 맞이한 소년, 소녀들에게 다시 한 번 불굴의 투지를 보여주기를 기원할 따름이다.


이덕원


- 덧붙이는 글 -

2006년 6월12일 작성.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 기사 보기]

  1. Commented by Favicon of http://www.pandawill.com/computer-laptops-c175/usb-hubs-c223.html BlogIcon usb hubs at 2011/10/08 11:31

    (가볍게 한숨을 쉬며) 그 경우에는 시스템이 결코 완성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