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마다 생애 처음으로 본 월드컵이 있을 것이다. 물론 갓난아이 때부터 부모 품에 안겨 월드컵을 맞이했겠지만 정작 기억하는 것은 소년, 소녀일 적 맞이한 월드컵이다. 이 때문에 한국 최초로 세계축구 무대에 발을 내디딘 1954년 스위스월드컵을 처음으로 기억하는 어르신에서부터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신화를 처음으로 기억하는 어린아이까지, 연령대에 따라 '첫 월드컵'은 다를 것이다.
소년, 아버지에게 축구를 배우다
20대 중반인 내가 기억하는 생애 첫 월드컵은 '도하의 기적'을 연출하며 극적으로 본선에 진출했던 1994 미국 월드컵이다. 내가 기억하는 생애 첫 축구경기도 11살 적에 본 한국 대표팀의 미국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경기다. 당시 우리 대표팀의 상대는 어느 중동국가였다고 기억할 뿐이다. 하지만 경기가 있던 날 밤늦은 시간까지 가게 문을 닫지 않고 텔레비전 앞에서 노심초사 경기를 지켜보던 아버지 모습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 또 그런 아버지 옆에서 오프사이드가 뭔지, 페널티킥이 뭔지 축구 경기 규칙을 처음 배웠던 기억도 새롭다.
1994년 6월 드디어 미국 월드컵이 열렸고 3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을 달성한 한국대표팀은 '디펜딩 챔피언' 독일, '무적함대' 스페인, 남미예선에서 돌풍을 일으킨 볼리비아와 한 조가 되어 경기를 치러야 했다. 그런 만큼 숙원의 16강 진출을 달성하기 위해 가야 할 길은 멀고도 험난했다. 유난히도 무더웠던 여름, 한국 대표팀의 선전을 바라며 이른 아침에 일어나 텔레비전 앞에 앉아 부모님과 함께 응원했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내 생애 첫 월드컵, 1994 미국 월드컵
한국의 첫 상대는 스페인이었다. 한국은 전반 25분 스페인 수비의 핵 나달이 퇴장당하며 수적인 우위를 점한 채 기대 이상의 선전을 펼쳤지만 스페인의 수비를 뚫지는 못했다. 그러다 후반 들어 살리나스와 고이코에체아에게 쉽게 연속골을 내주며 패색이 짙어갔다.
그러나 경기 막바지에 이르러 한국 대표팀은 아시아 축구 맹주의 저력을 과시했다. 후반 40분 홍명보의 프리킥이 스페인 수비수의 발을 맞고 골네트를 흔든 데 이어 후반 44분 서정원이 홍명보의 패스를 받아 페널티 지역 오른쪽에서 동점골을 터뜨린 것이다. 경기 결과는 2-2 무승부. 강호 스페인과의 경기에서 승점 1을 챙긴 한국은 그나마 약체로 평가된 볼리비아를 꺾으면 첫 월드컵 16강에 진출할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설렜다.
한국은 조별리그 두 번째 상대로 남미지역예선에서 의외의 선전을 펼치고 출전한 볼리비아를 만났다. 한국은 볼리비아를 월드컵 첫 승 제물이자, 월드컵 16강 진출의 발판으로 삼고자 경기 내내 파상공세를 펼쳤다. 그러나 황선홍이 수차례의 기회를 놓치며 골문은 쉽사리 열리지 않았다. 결국, 한국은 고질적인 골 결정력 부족으로 볼리비아와 득점 없이 비기며 다시 승점 1점을 추가하는데 만족해야 했다. 이에 따라 마지막 경기에서 독일과 최소한 비겨야만 16강을 바라볼 수 있었다.
한국은 조별리그 마지막 상대로 볼리비아에 이기고 스페인과 비기며 1승 1무를 기록 중인 독일을 만났다. 독일은 이미 16강 진출이 확정됐지만 조 1위를 차지하기 위해 경기 초반부터 한국을 몰아붙였다. 전 대회 우승국은 역시 강했다. 전반 11분 독일의 간판 골잡이 위르겐 클린스만에게 선제골을 내준 한국은 전반 18분에 리들레, 전반 35분에 클린스만에게 다시 골을 내주며 0-3으로 끌려갔다.
전반에만 3골을 내주며 자존심을 짓밟힌 한국은 후반 들어 배수진을 친 듯 독일에 맹공을 퍼붓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한국은 후반 7분 박정배의 패스를 받은 황선홍의 골에 이어 후반 18분 홍명보의 중거리 슈팅이 들어가며 2-3으로 좁히는 데 성공했다. 독일을 한 점차로 뒤쫓은 한국은 남은 30여 분 동안 총공세를 펼치며 체력적으로 지친 독일을 몰아붙였지만 끝내 동점골은 터지지 않았다.
한국의 조별리그 최종 결과는 2무 1패 승점 2점. 한국은 조 3위 6개국 중 4개국에 주어지는 와일드카드로 16강을 기대하기도 했지만 접전이 있었던 조가 많아 결국 16강에 오르는 데 실패하고 말았다.
16강 좌절, 소년은 이불 속에서 눈물을…
독일전이 끝나고 소년은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이불을 싸매고 꺼이꺼이 울다 지쳐 잠이 들었다. 한국은 쉽게 골을 허용하고 어렵게 골을 넣어 만회하곤 했지만 결정적인 순간 그 이상은 없었던 것이다. 너무나 아쉬운 패배였기에 더 가슴 아픈 월드컵이었다. 볼리비아전에서 수차례의 기회 중 단 하나만 골로 연결되었더라면, 체력을 소진하고 한국의 총공세에 쩔쩔매던 독일과의 경기에서 시간이 조금만 더 있었더라면 하는 생각에 아쉽고 분하기만 했다.
그리고 나는 조금 더 나이가 들고서야 한국이 미국 월드컵에서 월드컵 출전 사상 최초로 조 최하위를 면했다는 것을 알았다. 실제로 소년이 미국 월드컵에서 본 한국대표팀의 경기는 이전 수차례 출전했던 월드컵에서의 경기보다 결과는 물론이거니와 내용 면에서도 가장 좋은 성적이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미국 월드컵 당시 처음 월드컵을 본 소년은 한국이 세계축구의 변방이라는 사실을 알 리가 없었다.
불굴의 투지로 한국의 희망 온전히 보여 달라
내 생애 첫 월드컵은 이토록 가슴 아팠다. 하지만 나는 미국 월드컵에서 한국이 축구 강호들과 당당히 맞서 싸우는 불굴의 투지를 봤다. 한국이 언젠가는 세계축구의 중심에 우뚝 설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본 것이다. 그리고 8년 후 한국이 2002 한·일 월드컵에서 온 국민의 숙원이었던 1승은 물론 16강을 넘어 4강 진출까지 달성하면서 마침내 희망은 열매를 맺었다.
이제는 2006독일월드컵이다. 다시 새로운 도전의 문이 열린 것이다. 국민은 이번 월드컵에서 한국이 한·일 월드컵 4강 신화를 재연하기를 염원하지만 우려의 목소리도 높은 것이 사실이다. 개인적으로 많은 것을 바라지는 않는다. 다만 미국 월드컵을 보던 나처럼, 이번 2006독일월드컵을 생애 첫 월드컵으로 맞이한 소년, 소녀들에게 다시 한 번 불굴의 투지를 보여주기를 기원할 따름이다.
이덕원
- 덧붙이는 글 -
2006년 6월12일 작성.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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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볍게 한숨을 쉬며) 그 경우에는 시스템이 결코 완성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