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008/08/01 일탈을 일탈해 벌어진 ‘경찰기동대(?)’ 소동 (3)
  2. 2007/08/05 시간도 고통을 줄여줄 뿐 상처를 아물게 하진 못한다 (4)
  3. 2007/07/19 지음의 부재, 그 외로움
  4. 2007/07/18 전지현으로 '통'하고 '대장남'에 막히다 (2)

일탈을 일탈해 벌어진 ‘경찰기동대(?)’ 소동

e s s a y 2008/08/01 14:31 posted by 곱씹다

‘수능 전야(前夜)’면 예비 수험생의 모습은 크게 둘로 갈린다. 다음날 새벽부터 선배들을 응원하고자 일찌감치 잠자리에 드는 ‘새 나라의 어린이(?)’와, ‘예비’라는 보호막을 걷어내기에 앞서 기나긴 밤 동안 일탈을 감행하는 ‘불량 청소년’. 8년 전 춘천에서 고등학교에 다니던 나는 전형적인 후자에 속했다. 새 천 년에도 수능시험은 건재했고, 우리 차례마저 시나브로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더구나 타고 가던 ‘이해찬호’는 목적지까지 가지 않는다며 황급히 ‘주입식 교육호’로 갈아 태운 상황. 요컨대, 선배들의 수능만 끝나면 본격적으로 수험생이라는 딱지를 붙여 ‘입시 전쟁터’로 내몰 터였다. 결코 전날 밤을 허투루 보낼 순 없었다.


그러니 애초 응원 따윈 ‘정예부대’에 맡기기로 마음먹고 짬짬이 일탈을 계획했다. 멤버는 나를 포함해 같은 반 친구 7명. 일단 머리를 모으자 내용은 단박에 결정됐다. “예쁜 여자들과의 즐거운 술자리!” 아무렴, 술과 이성에 성급히 눈떠버린 열여덟 청춘에 그보다 좋은 일탈도 없었다.


그럼 ‘누구와 어디서’ 마시느냐가 관건이었다. 먼저 단속이 철저한 수능 전야엔 ‘뚫어놓은 술집’도 여간 부담스런 게 아니었다. 그래서 내가 낸 아이디어가 가까운 “강촌으로 진출하자”는 것. 유원지에서라면 팬션을 잡아 술을 마실 수 있지 않겠냐는 생각이었다. 물론 경비는 단골 메뉴인 ‘밥값·책값 빼돌리기 신공’으로 급조할 수 있었다. 남은 문제는 가장 중요한 여자들이었다. 궁여지책으로 저녁 시간마다 식당 대신 피시방으로 발길을 돌려 ‘채팅’에 열중했다. 계획을 털어놓는 족족 “즐팅”을 날리는 ‘님’들 사이에서 가까스로 네 명의 여학생과 ‘번개’을 잡았고, 모든 게 잘 풀리는 성싶었다.


일탈을 일탈하자 출동한 ‘경찰기동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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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죽은 시인과 사회>


그리하여 학수고대했던 ‘디데이’. 사복으로 한껏 멋을 내고 약속장소인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설렘과 함께 ‘예쁜’ 여자가 아니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교차했다. 그때, 노심초사하는 우리 쪽으로 한 여자가 성큼성큼 걸어왔다. 시쳇말로 ‘전생에 지구를 구한 게 분명하다’ 싶은 미모였다. 뒤이어 다가온 그녀의 친구는 평범했지만, 넷 중 둘이 그 정도면 쾌재를 부를 일이었다. 그런데 웬걸, 그 둘이 전부였다. 나머지 두 명이 갑자기 못 나오게 됐다는 것이었다. 진작부터 짝을 맞추는 건 기대하지도 않았었지만, 그래도 남자 일곱에 달랑 여자 둘이라니 아무래도 김빠질밖에. 어쨌든 강촌행 막차는 제시간에 도착했고 고민할 겨를 없이 모두 버스에 올라야 했다.


일이 꼬인 것도 그때부터였다. 친구 녀석들의 마음이 하나같이 예쁜 여자에게로 쏠려 있었던 것이다. 물론 나 또한 별반 다르지 않았지만, 당장 닥친 난관에 애써 침착하고자 했다. 의도했던 즐거운 술자리를 위해선 보통 큰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즈음, 친구 K에게 걸려온 한 통의 전화. “야, 내 친군데 지금 강촌에 여자들 되게 많대.” 같은 계획을 세워 실행 중이라는 K 친구의 말은 가뜩이나 혼란스러운 상황에 나를 흔들었고, 불쑥 고약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쟤네한텐 미안하지만, 그냥 강촌에서 ‘헌팅’하는 건 어때?” 다들 선뜻 결정을 못 하는 눈치였다. 하긴 인도적으로 너무한 일 같아 마음을 고쳐먹고 돌아섰다. 그사이 버스는 목적지에 다다랐고 지리를 아는 내가 앞장서서 내렸다. 그런데 우르르 쏟아지는 친구들 뒤로 무슨 영문인지 그녀들이 보이지 않았다.


“쟤넨 왜 안 내려? 내리라고 말 안 했어?”

“우리끼리 내리는 건 줄 알았지.”

“야, 그냥 해본 소리지!”


예나 지금이나 ‘소통의 부재’가 화근이다. 강촌을 지나 창촌까지 갔을 그녀들은 화가 단단히 났을 터. 설상가상으로, 어찌 된 일인지 강촌 거리엔 사람은커녕 개미 새끼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K 친구에 대한 응징을 뒤로하고, ‘일탈’된 계획을 제자리로 되돌리는 일이 시급했다. 결국 L이 그녀들에게 전화를 걸었고 자초지종을 설명하려던 그의 낯빛이 창백해졌다. 아차 싶어 내가 전화를 뺏어 받자, 아니나 다를까 ‘네이티브(?) 스피커’ 수준의 욕이 쏟아졌다. ‘이쯤 가면 막 하자는 거지’ 싶어 나 또한 욕을 돌려줬고, 잠시 뒤 전화가 끊겼다. 그러고 10분이나 지났을까. 표류하는 우리 쪽으로 웬 지프차 한 대가 다가오는 게 아닌가. 곧이어 선팅한 조수석 창문이 스르륵 열리더니 험악한 인상의 남자가 얼굴을 내밀고 외쳤다.


“저기 공터 보이지? 저기까지 빛의 속도로 뛴다. 실시!”


‘학생회장 인책론’에 선도부장을 제물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일단 냅다 달렸다. “경찰기동댄가 봐!”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누군가의 말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리고 그때, 옆에서 달리던 Y 쪽에서 와당탕하는 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라 고개를 돌리자, Y가 그물에 걸린 물고기처럼 철조망에 걸려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시력이 나쁜 그가 정신없이 달리다 미처 자전거 대여점 울타리를 보지 못하고 ‘골인’한 것. 심각한 상황이었음에도 모두 폭소가 터지고 말았다.


“이 자식들이, 웃어?” 공터에서 기다리고 있던 남자의 불호령에 다시 현실을 직시했고, 이내 차 뒷문이 열리면서 상황이 제대로 파악됐다. “얘네 맞지? 너희 중에 아까 욕한 새끼 나와!” 뒷좌석에서 우리를 노려보고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그녀들. 그 남자는 경찰기동대가 아닌 그녀들의 ‘아는 오빠’이자 춘천에서 ‘침 좀 뱉는다’는 다른 학교 1년 선배였던 것이다. 그녀들의 호출을 받고 한달음에 출동한 듯 보였다. 욕하는 품이 여간 아니더니, ‘믿는 구석’이 있었던 셈이다. 망신도 이런 망신이 없었다. 하릴없이 내가 앞으로 나갔고, 순간 눈앞에 별이 보였다. 부러진 죽도로 머리를 얻어맞은 것.


“너희 인마, 사내자식들이 같이 놀기로 해놓고 여자애들을 버려? 너희 학교 학생회장 이름이 뭐야?”

“······.”

“말 안 해?”

“J요.”

"J? J, 이 자식을 조져야겠구먼."


그가 뜬금없는 ‘학생회장 인책론’을 제기하고 사라지자, 비로소 친구들이 펄쩍 뛰기 시작했다. J는 학생회장이 아니라는 얘기였다. 그러고 보니 J는 줄인 교복과 원색 신발로 패션을 선도하는 나를 괴롭히던 ‘선도부장’. 매일같이 보는 얼굴이 그 얼굴이니 헷갈렸던 것이다. 서둘러 친구들의 인맥을 총동원했고 간신히 J의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었다.


일이 이렇게 된 이상, 더는 강촌에 남아있을 이유가 없었다. 우리는 초연히 춘천행 막차에 몸을 싣고 학교 앞 고기 뷔페로 자리를 옮겼다. 우여곡절에 저녁을 걸러 헛헛한 속부터 달래야 했기 때문이다. 꾸역꾸역 고기를 입에 넣는 내내 “경찰기동대”라는 억측과 ‘그물에 낚인 Y’의 모습이 떠올라 한바탕 웃음이 쏟아졌다. 뷔페 문을 나오니 어느새 자정을 훌쩍 넘겨 수능일. 예비라는 보호막도 기어이 사그라져 있었다.


역시 8년 동안 웃기는 ‘개그맨 지망생’ 선배


그로부터 꼬박 1년 동안 우리는 잔인한 입시 전쟁을 치러야 했고, 마침내 수능일에 이르러선 희비가 엇갈렸다. 나 또한 세상이 세우는 줄대로라면 패자 축에 들 것만 같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시험이 끝나기가 무섭게 친구 H네 미용실로 달려갔다. 파마로 그간 억눌렸던 일탈을 한 방에 날려버리고자 했던 것이다. 그런데 한창 머리 손질을 하고 있을 때, 옆에서 티브이를 보던 Y가 화들짝 놀라며 나를 불렀다.


“야, 강촌에서 본 그 선배 티브이에 나왔어!”

“누구? 어! 그러네.”

“개그맨 지망생이라는데?”

“원래 저 선배가 좀 웃기잖아.”


심지어 그는 ‘8년째’ 웃기고 있다. 요즘도 7명의 친구는 수능 전야에 대한 얘기만 나오면 배꼽을 잡고 웃기 때문이다. 돌이켜 보면, 그날의 일탈은 고3 시절부터 지금까지 돈독한 우정을 쌓는 데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하룻밤의 망신이 8년 동안의 연대감으로 진화한 셈이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팅 선생(로빈 윌리엄스 분)’이 읊던 <가지 않은 길>(로버트 프로스트 작)에 빗대면 "숲 속의 두 갈래 길에서 ‘우리는 실수로’ 왕래가 적은 길을 택했고, 그게 ‘우리 관계를’ 다르게 만들었다"고나 할까.


어느덧 스물여섯, 우리는 다시 취업이라는 전쟁과 맞닥뜨렸다. 역시 일탈이 간절한 시기지만, 그 사이 현실에 닳고 닳은 탓인지 누구도 ‘카르페 디엠(현재를 즐겨라)’을 외치지 못한다. 철은 없었어도 수능 전야의 추억이 더 애틋한 이유다.


이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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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년이 걸릴 것입니다.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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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입한다면 시스템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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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를내며) 하지만 우리는

시간도 고통을 줄여줄 뿐 상처를 아물게 하진 못한다

d i a r y 2007/08/05 23:44 posted by 곱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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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덕원

 
몇 해 전, 머릿속에 불쑥 주인 모를 번호 하나가 스쳤다. 입에 익은 번호였지만 정작 내 휴대전화엔 없는 번호였다. 한참 동안 머리를 쥐어짠 끝에 나는 간신히 누구를 떠올렸고, 이내 뜨거운 눈물이 뺨을 타고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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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련 이미지


그 번호의 주인은 실제로 없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내 열여덟 살 어느 여름날부터는. 그 번호는 내가 함께 간 계곡에서 잃은 친구 ‘땅땅’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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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덕원


우리는 모처럼 여름방학을 맞아 가까운 계곡으로 물놀이를 갔었다. 말이 물놀이지 바리바리 싸 간 건 술과 안주 따위였고, 치기 어린 술판은 일찌감치 시작됐다. 아니나 다를까 뙤약볕이 내리쬐는 바위 위에서 안주는 먹는 둥 마는 둥 마신 술에 하나둘 거나하게 취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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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진성


의미 없는 대화가 사뭇 진지하게 이어지고 있는데, 별안간 바위 아래서 풍덩하는 소리가 들렸다. 땅땅이 미끄러져 물에 빠진 것이었다. 다급한 마음에 나와 친구는 연이어 물속으로 몸을 던졌지만, 허우적거리긴 마찬가지였다. 다 같이 죽음의 문턱으로 다다르는 듯했던 그때, 마침 근처에 있던 청년들이 뛰어들어 우리를 뭍으로 건져냈다. 하지만 이미 수면 아래로 자취를 감췄던 땅땅은 다시 숨을 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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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덕원

 
어느덧 7년여가 흘러  녀석을 배웅한 그곳도 춘천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명소가 됐다. 나 또한 샛노란 염색머리의 고등학생에서 벌써 머리숱에 고민하는 취업준비생으로 변했다. 그런데 하루키의 소설 속 구절처럼 ‘죽은 자만이 언제나 열여덟’이다. 


ⓒ 이덕원

 
누군가는 시간이 해결해 줄 거라고 했다. 다른 이는 가슴 속 한구석에 묻어 두고 살아 가는 거라고도 했다. 그러나 이제 와 확실해진 건 시간도 고통을 줄여줄 뿐 상처를 아물게 하진 못한다는 것이다.


[관련 글] 지음의 부재, 그 '외로움'

이덕원

- 덧붙이는 글 - 

2007년 6월21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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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구사항을 담은 문서를 건네주었다.PM : 다섯명의 프로그래머를

지음의 부재, 그 외로움

d i a r y 2007/07/19 20:56 posted by 곱씹다
지음[知音] : 소리를 알아듣는다는 뜻으로 자기의 속마음을 알아주는 친구를 이르는 말.


지음.
지기지우(知己之友)와 같은 뜻으로 쓰인다.


중국 춘추시대 거문고의 명수 백아(伯牙)와 그의 친구 종자기(鍾子期)의 고사(故事)에서 비롯된 말이다. 


백아가 거문고를 들고 높은 산에 오르고 싶은 마음으로 이것을 타면 종자기는 옆에서, "참으로 근사하다. 하늘을 찌를 듯한 산이 눈앞에 나타나 있구나"라고 말했다. 또 백아가 흐르는 강물을 생각하며 거문고를 타면 종자기는 "기가 막히다. 유유히 흐르는 강물이 눈앞을 지나가는 것 같구나" 하고 감탄했다. 종자기가 죽자 백아는 거문고를 부수고 줄을 끊은 다음 다시는 거문고를 타지 않았다고 한다. 이 세상에 다시는 자기 거문고 소리를 들려 줄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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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혐오스러운 마츠코의 일생> 포스터. ⓒ 스폰지


기쁨을 함께 나누는 것. 슬픔을 함께 나누는 것. 마음속 깊은 곳의 생각을 공유하는 것. 이 쉬우면서도 어려운 것을 '함께' 하는 사람이 바로 지음이다.

내게는 과분할 만큼 많은 친구가 있다. 그럼에도, 정작 그 중에 지음은 없다. 가슴 아리는 사랑을 나눈 연인도 있었다. 하지만 남이 된 그녀는 지음이 아니었나 보다.

지음의 부재. 이 지음의 부재는 늘 ‘땅땅’이 그립게 한다. 그리고 땅땅의 부재는 다시 나를 외롭게 한다.


문득, 얼마 전 본 영화 <혐오스러운 마츠코의 일생>에서 주인공 마츠코의 ‘독백’이 떠오른다.

"다녀왔습니다!"



이덕원


- 덧붙이는 글 -

2007년 2월13일 작성. 

전지현으로 '통'하고 '대장남'에 막히다

e s s a y 2007/07/18 03:44 posted by 곱씹다

한·일 대학생 교류...역사를 간직한 도쿄대에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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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사는 끝났지만 친구는 남았다. ⓒ 김귀현


첫 출국, 그리고 '2006 한일 친구만들기' 참가. 이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찼다. 게다가 일본 대학생 친구들을 만나게 된다니. 다소 어리둥절하기까지 했다.

나는 대학생팀에 소속됐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우리 팀 한국 시민기자 4명은 모두 남자다. 어리둥절한 나(24. 한림대), 누구보다 일본 친구들에게 궁금한 것이 많다는 허환주(28. 한성대), 최근 공부한 일본어로 일본 친구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겠다는 김귀현(26. 한양대), 일본 친구들을 사귀어 한국으로 초대하고 싶다는 유동훈(25. 경원대).

우리는 나이와 생김새는 달랐지만 설레는 가슴은 똑같았다. 여기에 우리는 같은 소망을 하나씩 품고 있었다. '제발 일본 여대생이 많이 나오게 해 주소서.'


첫 만남, 음식 씹는 소리만 가득


16일, 드디어 기다렸던 일본 친구들과의 첫 만남이 점심식사 자리에서 이뤄졌다. 그런데 일본 친구들을 만나자 정작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각자의 시선은 서로의 도시락에만 머물렀다. 음식 씹는 소리와 함께 어색한 분위기가 한동안 이어졌다.

썰렁한 분위기를 참을 수 없었던 것일까. 통역을 맡은 김경화씨가 자기소개를 제안했다. 비로소 어색한 침묵은 깨졌다. 그리고 다소 소란스런 식사가 시작됐다.

일본 대학생 시민기자는 모두 5명. 남자 셋, 여자 둘이다. 그러나 나쁘지 않았다.

오사카에서 7시간 동안이나 버스를 타고 왔다는 카토 마사노리(25), IT유비쿼터스를 전공하고 있다는 니시와키 야스히로(23. 시즈오카대), 다큐멘터리와 보도영상촬영을 공부한다는 요코야마 슈헤이(23. 도쿄예술대), 동방신기를 좋아하고 한국문화에 관심이 많다는 야마바타 사토미(22. 게이오대), 보아를 좋아하고 정치적인 문제에 관심이 많다는 하지모토 나나미(21. 게이오대).

자기소개는 각자 일본어, 영어 그리고 한국어를 섞어서 했다. 사토미는 한국말을 꽤 잘하는 편이었고, 야스히로도 기본적인 한국말은 알아듣고 말할 줄 알았다. 한국 시민기자 중에는 김귀현씨의 일본어 실력이 돋보였다.

전지현으로 '통'하고, '대장남'으로 막히다


자기소개를 통해 어색한 분위기가 누그러지자, 양국의 대학생들은 통역을 거치지 않고 둘 셋씩 무리를 지어 일본어, 영어, 한국어에 손짓 발짓까지 섞어가며 본격적인 대화를 시도했다.


"두 유 노우 <엽기적인 그녀> 전지현?"

야스히로 "She is a entertainer I like most. I have seen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 the movie she stared"

나는 '콩글리시'로 물었는데 야스히로는 '잉글리시'로 대답했다. 다소 민망한 순간이었다. 그러나 소통이 돼서 다행이었다. 우리는 전지현으로 '통'했다.

역시 한일 양국의 대학생들이 기본적인 외국어 실력으로 편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주제는 양국의 연예인이었다. 일본 친구들은 생각했던 것보다도 한국 연예인을 많이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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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일 양국의 대학생들이 서로 궁금한 점을 묻고 있다. ⓒ 이덕원


지하철을 타고 도쿄대로 이동하는 동안 야스히로는 가끔 김종국의 노래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사랑스러워'를 불렀다. 나는 일본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의 감동을 이야기했다. 우리의 공동취재 현장은 도쿄대였다.

얼마쯤 지났을까. 야스히로가 어눌한 한국말로 물었다.

"대장남, 대장녀가 뭐야?"


대장남, 대장녀? 알쏭달쏭한 한 말이었다. 나는 야스히로의 손짓을 보고 유추했다. '아, 한국 남성주의를 물어보는 거구나.' 즉 대장(大將)남을 표현하고 싶은 것으로 받아들였다. 짧은 영어 실력과 손짓 발짓을 동원해 한국 사회의 남성 우월주의에 대해 설명했다. 하지만 뒤이은 야스히로의 질문에 식은땀이 흘렀다.


"그럼 김치남, 김치녀는 뭐야?"


야스히로가 물은 건 '된장남' '된장녀'였다. '김치남' '김치녀'도 '고추장남, 고추장녀'를 말한 것이었다. 한국인 친구가 그랬단다. 한국남성 중에는 된장남 고추장남이 있고, 한국여성 중에는 된장녀 고추장녀가 있다고.

나는 다시 아는 모든 영어 단어와 내 몸의 온갖 움직임을 동원해 설명했다. 된장남과 된장녀에 대해서. 지하철의 일본 사람들이 나를 이상하게 쳐다봤다.


역사를 기억하는 도쿄대


전지현으로 '통'하고 된장남 된장녀를 설명하다 보니 도쿄대학교 도착했다. 도쿄대는 올해 영국의 <더 타임스>가 매긴 세계 대학 순위 평가에서 19위에 오른 명문대다.


우리 한국 대학생들은 도쿄대를 처음 방문하며 '세계적인 명문대는 어떤 모습일까', '일본의 대학은 한국의 대학과 무엇이 어떻게 다를까' 하는 궁금증을 갖고 있었다.


도쿄대의 첫 인상은 '명문대'보다는 일본의 지난날을 온전히 기억하는 '역사'로 다가왔다. 캠퍼스 한 가운데 위치한 '야스다 강당'은 단연 인상적이다. 야스다 강당은 1960년대 일본 학생운동의 상징으로 일본 민주주의 역사에서 큰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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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쿄대 한 가운데 위치한 야스다 강당. ⓒ 유동훈


동행한 일본 친구 마사노리는 정치학을 전공하는 대학원생답게 야스다 사건에 대해 직접 설명해줬다.

"야스다 사건은 1969년 1월18일 당시 일본 학생운동조직인 전국공투회의(전공투) 소속 학생들이 도쿄대 야스다강당을 점거농성하던 중 8,500명의 경찰 기동대에 의해 전원 연행된 사건이야."


도쿄대에는 맨홀조차 역사를 오롯이 간직하고 있다. 도쿄대의 한 맨홀 표면에는 도쿄대의 전신인 '제국대학'으로 교명이 쓰여있다. '제국대학'에서 '도쿄제국대학'으로 다시 개칭한 것이 1897년임을 고려하면 100년은 족히 넘었다는 증거다.

야스다 강당 뒤편에 숲으로 둘러싸인 연못 '산시로' 역시 사연을 품고 있다. 연못의 이름은 일본 근대문학의 창시자 나쓰메 소세끼의 소설 <산시로>에서 따온 것이다. 실제로 산시로 연못은 소설에서 남녀 주인공이 처음 만나는 장소다.

이 밖에 지진 대비 설계 기술이 없었던 시기에 만들어져 기둥이 세 아름은 족히 되는 건물도 인상 깊었다.

가을의 끝자락, 은행나무가 많은 도쿄대는 노랗게 물들어 아름다웠다. 우리 한일 대학생들은 아름다운 풍경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점심식사 때부터 시작된 일본 친구들과의 만남은 밤늦은 시간에 끝났다. 참 짧은 순간이었다. 일본 친구들이 전철을 타고 떠날 때는 머리가 멍했다. 서울에서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했다. 하지만 그때 우린 서로 다른 위치에 있을 것이다.

한국 대학생 시민기자 4명 중 3명은 곧 졸업을 한다. 그래도 다시 서울에서 만나면 무슨 이야기를 나누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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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일 양국의 대학생들이 지난 16일 도쿄대를 방문했다. ⓒ 허환주


이덕원


- 덧붙이는 글 -

2006년 12월20일 작성.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 기사 보기]

  1. Commented by Favicon of http://www.pandawill.com/mobile-phone-c1/tv-phone-c3.html BlogIcon tv phone at 2011/10/08 11:30

    프로그래머 :

  2. Commented by Favicon of http://www.pandawill.com/car-electronics-c50.html BlogIcon car electronics at 2011/10/08 11:31

    않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