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007/07/15 이제 '월드컵 박사'가 다 된 울 엄마 (1)
  2. 2007/07/14 출전 사상 최초로 조 최하위 면한 월드컵 (1)
  3. 2007/07/11 월드컵, 어느 방송으로 볼까?
  4. 2007/07/06 '평점 매기기'가 대세? (1)

이제 '월드컵 박사'가 다 된 울 엄마

e s s a y 2007/07/15 15:24 posted by 곱씹다

우리 가족의 추억이 담긴 2006독일월드컵을 보내며



어버이날을 앞두고 여느 자식들처럼 고민에 빠졌다. 매년 부모님은 어버이날 며칠 전부터 내게 쓸데없이 뭐 살 생각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하셨지만 또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것이 자식 마음 아닌가. 그래서 그나마 주머니 사정이 넉넉할 땐 카네이션과 속옷, 넉넉하지 못할 땐 카네이션만 달랑 사드리곤 했는데 이젠 레퍼토리를 바꿔보고 싶었다. 그러던 차에 생각난 것이 얼마 전 부모님의 대화였다.


"이번 월드컵엔 우리도 ‘붉은 악마 티’ 사야지?"

"며칠 전에 마트에서 보니까 9천 원에 팔던데…."


그렇게 어버이날 선물을 결정하고 붉은 악마 티셔츠를 사고자 냉큼 상경 길에 올랐다. 부모님에게 사드리는 것이니 만큼 마트에서 파는 9천 원짜리 티셔츠보단 우리 동네에는 없는 모 의류사의 티셔츠를 사고자 했기 때문이다.


아버지, 어머니의 사이즈에 맞는 것으로 고르고 '내 것도 사야 하는 건가' 하는 고민에 잠시 망설였다. 도통 단체복을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라 2002년에 그랬듯 이번 월드컵에도 붉은 악마 티셔츠를 입을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월드컵엔 아버지, 어머니가 입고 계실 것이 아닌가. 두 분이 나란히 붉은 악마 티셔츠를 입으신 모습을 상상하니 도무지 나만 빠질 수 없었다. 결국 내 것까지 세 장을 샀다.


집으로 돌아와 세 장의 티셔츠 꺼내놨고 부모님의 반응을 기다렸다. 그런데 웬걸 지금껏 보지 못한 부모님의 반응이 이어졌다.


"야, 안 그래도 올해는 꼭 한 장 얻어 입어야지 했는데."

"이거 비싼 거 아니야? 예쁘긴 예쁘네."


월드컵에 우리 가족의 추억을 담기로 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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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가족의 붉은 악마 티셔츠. ⓒ 이덕원

그렇게 월드컵을 즐길 준비를 마치니, 어느덧 월드컵 개막일이 코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사실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혼자 고민 아닌 고민에 빠져 있었다. 한국의 경기는 최소 세 번. 마냥 설레기만 해야 할 때인데 나는 그 세 경기를 누구와 볼 것인가 하는 다소 엉뚱한 고민을 하고 있던 것이다.

광화문에서 함께 거리 응원하자는 여자친구, 찜질방에 모여서 응원하자는 고교동창들, 자취방에서 족발에 소주 한잔 걸치며 응원하자는 대학동기들.


하지만 작은 텔레비전 화면으로 집에서 단출하게 보실 부모님이 자꾸 마음에 걸렸다. 간접프리킥이 뭐고 직접프리킥이 뭔지, 페널티킥은 뭐고 오프사이드는 뭔지 가르쳐주신 부모님이 마음에 걸렸다. 어쩌면 무심하게 주무시는 어머니를 옆에 두고 아버지는 홀로 축구경기를 시청하실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결국, 나는 가족과 함께 월드컵을 즐기기로 했다. 사실은 부모님과 함께 봐야 더 재밌게 볼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아버지만큼 나와 축구경기를 보는 시각이 비슷한 친구도 없고, 어머니만큼 현장감 넘치게 소리 지르며 보는 여자친구도 없으니.


월드컵의 막이 오르고 한국의 토고전, 프랑스전, 스위스전이 이어졌다. 응원을 하며 먹을 간식으로 준비한 족발은 뒤로 한 채 노심초사 경기를 보던 토고전, 그 어느 때보다 어머니가 현장감 넘치게 환호한 프랑스전, 경기가 끝나고 부모님과 함께 심판의 편파판정에 대한 울분을 삼키지 못한 채 술만 마신 스위스전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월드컵 박사가 다 된 울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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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일, 결승전을 보시는 어머니. ⓒ 이덕원

불행히도 한국의 경기는 최소한으로 주어진 세 번에 그쳤다. 그리고 나는 토너먼트부터 월드컵 경기를 시청할 수 없었다. 물론 한국과 스위스의 경기에서 심판의 편파판정에 월드컵에 대한 정나미가 떨어지기도 했지만, 모 회사 인턴생활을 위해 상경해 일과에 바쁘다 보니 보고 싶어도 볼 수 없었다.


그렇게 토너먼트 경기를 놓치고 있던 차, 집으로 내려간 나는 그동안 월드컵 경기를 시청했을 아버지에게 각 경기의 내용을 물었다.


"네 엄마한테 물어봐, 아주 월드컵 박사가 다 됐어."


아버지의 말이 끝나자마자 어머니의 말이 이어졌다.


"거봐, 내가 프랑스가 잘할 거라고 그랬지? 포르투갈에 걔(크리스티아누 호날두)는 보면 볼수록 잘 생겼더라. 참, 루니 걔는 애가 정말 못 됐더라."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버지만 간간이 관심이 있는 경기를 골라 보고, 어머니는 한국이 16강에서 탈락했으니 관심 밖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버지의 말처럼 어머니는 월드컵 박사가 다 된 듯 경기내용부터 선수까지 줄줄이 외고 계셨다.


우리 가족의 추억이 담긴 월드컵을 보내며


월드컵 결승전이 있었던 오늘(10일) 새벽, 이번 월드컵의 마지막 경기를 보고자 알람을 맞추고 잔 나는 정신없이 자다가 경기가 끝나갈 즈음에서야 눈을 떴다. 그리고 방문 사이로 들어온 한줄기 빛을 보고 나간 거실에서 나는 다시 한 번 놀라고 말았다. 어머니가 경기를 보고 계신 게 아닌가. 그런데 이어진 어머니의 말이 더욱 놀라웠다.


"오늘 지단 컨디션이 별로네, 경기는 프랑스가 더 잘했어."


어머니는 경기를 처음부터 쭉 보고 계셨다고 한다. 그리고 잠시 후 '지단'이 홧김에 상대 선수를 머리로 들이받고 퇴장당하자, 이에 어머니와 나는 흥분하기 시작했다. 또 이 때문에 아버지도 잠에서 깨 경기 시청에 합류하셨다.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결승전은 1대 1의 공방 끝에 연장전에 접어들었지만, 연장을 통해서도 승부를 내지 못했다. 결국, 내가 아침 첫 차를 타고 상경해야 하는 탓에 아버지와 난 승부차기를 보지 못하고 터미널로 향해야 했다.


터미널로 가는 길, 라디오를 통해 들은 승부차기의 결과는 5대 3으로 이탈리아의 우승이었다. 아마도 홀로 집에서 승부차기를 지켜보던 어머니는 늘 잘 생겼다던 프랑스 선수 '트레제게'의 실축에 안타까워하셨을 것 같다.


2006독일월드컵, 훗날 돌이켜보면 이러한 우리 가족의 추억이 알알이 담겨 있을 것이다.

이덕원


- 덧붙이는 글 -

2006년 7월10일 작성.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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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전 사상 최초로 조 최하위 면한 월드컵

c o l u m n 2007/07/14 23:53 posted by 곱씹다
생애 첫 월드컵을 맞은 꿈나무에게 희망을…


 

사람마다 생애 처음으로 본 월드컵이 있을 것이다. 물론 갓난아이 때부터 부모 품에 안겨 월드컵을 맞이했겠지만 정작 기억하는 것은 소년, 소녀일 적 맞이한 월드컵이다. 이 때문에 한국 최초로 세계축구 무대에 발을 내디딘 1954년 스위스월드컵을 처음으로 기억하는 어르신에서부터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신화를 처음으로 기억하는 어린아이까지, 연령대에 따라 '첫 월드컵'은 다를 것이다.


소년, 아버지에게 축구를 배우다


20대 중반인 내가 기억하는 생애 첫 월드컵은 '도하의 기적'을 연출하며 극적으로 본선에 진출했던 1994 미국 월드컵이다. 내가 기억하는 생애 첫 축구경기도 11살 적에 본 한국 대표팀의 미국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경기다. 당시 우리 대표팀의 상대는 어느 중동국가였다고 기억할 뿐이다. 하지만 경기가 있던 날 밤늦은 시간까지 가게 문을 닫지 않고 텔레비전 앞에서 노심초사 경기를 지켜보던 아버지 모습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 또 그런 아버지 옆에서 오프사이드가 뭔지, 페널티킥이 뭔지 축구 경기 규칙을 처음 배웠던 기억도 새롭다.


1994년 6월 드디어 미국 월드컵이 열렸고 3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을 달성한 한국대표팀은 '디펜딩 챔피언' 독일, '무적함대' 스페인, 남미예선에서 돌풍을 일으킨 볼리비아와 한 조가 되어 경기를 치러야 했다. 그런 만큼 숙원의 16강 진출을 달성하기 위해 가야 할 길은 멀고도 험난했다. 유난히도 무더웠던 여름, 한국 대표팀의 선전을 바라며 이른 아침에 일어나 텔레비전 앞에 앉아 부모님과 함께 응원했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내 생애 첫 월드컵, 1994 미국 월드컵


한국의 첫 상대는 스페인이었다. 한국은 전반 25분 스페인 수비의 핵 나달이 퇴장당하며 수적인 우위를 점한 채 기대 이상의 선전을 펼쳤지만 스페인의 수비를 뚫지는 못했다. 그러다 후반 들어 살리나스와 고이코에체아에게 쉽게 연속골을 내주며 패색이 짙어갔다.


그러나 경기 막바지에 이르러 한국 대표팀은 아시아 축구 맹주의 저력을 과시했다. 후반 40분 홍명보의 프리킥이 스페인 수비수의 발을 맞고 골네트를 흔든 데 이어 후반 44분 서정원이 홍명보의 패스를 받아 페널티 지역 오른쪽에서 동점골을 터뜨린 것이다.
경기 결과는 2-2 무승부. 강호 스페인과의 경기에서 승점 1을 챙긴 한국은 그나마 약체로 평가된 볼리비아를 꺾으면 첫 월드컵 16강에 진출할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설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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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4 미국 월드컵 스페인전에서 동점골을 넣고 포효하는 서정원 선수 ⓒ 서정원 팬 페이지 '날쌘돌이'


한국은 조별리그 두 번째 상대로 남미지역예선에서 의외의 선전을 펼치고 출전한 볼리비아를 만났다. 한국은 볼리비아를 월드컵 첫 승 제물이자, 월드컵 16강 진출의 발판으로 삼고자 경기 내내 파상공세를 펼쳤다. 그러나 황선홍이 수차례의 기회를 놓치며 골문은 쉽사리 열리지 않았다. 결국, 한국은 고질적인 골 결정력 부족으로 볼리비아와 득점 없이 비기며 다시 승점 1점을 추가하는데 만족해야 했다. 이에 따라 마지막 경기에서 독일과 최소한 비겨야만 16강을 바라볼 수 있었다.


한국은 조별리그 마지막 상대로 볼리비아에 이기고 스페인과 비기며 1승 1무를 기록 중인 독일을 만났다. 독일은 이미 16강 진출이 확정됐지만 조 1위를 차지하기 위해 경기 초반부터 한국을 몰아붙였다. 전 대회 우승국은 역시 강했다. 전반 11분 독일의 간판 골잡이 위르겐 클린스만에게 선제골을 내준 한국은 전반 18분에 리들레, 전반 35분에 클린스만에게 다시 골을 내주며 0-3으로 끌려갔다.

전반에만 3골을 내주며 자존심을 짓밟힌 한국은 후반 들어 배수진을 친 듯 독일에 맹공을 퍼붓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한국은 후반 7분 박정배의 패스를 받은 황선홍의 골에 이어 후반 18분 홍명보의 중거리 슈팅이 들어가며 2-3으로 좁히는 데 성공했다. 독일을 한 점차로 뒤쫓은 한국은 남은 30여 분 동안 총공세를 펼치며 체력적으로 지친 독일을 몰아붙였지만 끝내 동점골은 터지지 않았다.

한국의 조별리그 최종 결과는 2무 1패 승점 2점. 한국은 조 3위 6개국 중 4개국에 주어지는 와일드카드로 16강을 기대하기도 했지만 접전이 있었던 조가 많아 결국 16강에 오르는 데 실패하고 말았다. 


16강 좌절, 소년은 이불 속에서 눈물을


독일전이 끝나고 소년은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이불을 싸매고 꺼이꺼이 울다 지쳐 잠이 들었다. 한국은 쉽게 골을 허용하고 어렵게 골을 넣어 만회하곤 했지만 결정적인 순간 그 이상은 없었던 것이다. 너무나 아쉬운 패배였기에 더 가슴 아픈 월드컵이었다. 볼리비아전에서 수차례의 기회 중 단 하나만 골로 연결되었더라면, 체력을 소진하고 한국의 총공세에 쩔쩔매던 독일과의 경기에서 시간이 조금만 더 있었더라면 하는 생각에 아쉽고 분하기만 했다.


그리고 나는 조금 더 나이가 들고서야 한국이 미국 월드컵에서 월드컵 출전 사상 최초로 조 최하위를 면했다는 것을 알았다. 실제로 소년이 미국 월드컵에서 본 한국대표팀의 경기는 이전 수차례 출전했던 월드컵에서의 경기보다 결과는 물론이거니와 내용 면에서도 가장 좋은 성적이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미국 월드컵 당시 처음 월드컵을 본 소년은 한국이 세계축구의 변방이라는 사실을 알 리가 없었다.


불굴의 투지로 한국의 희망 온전히 보여 달라


내 생애 첫 월드컵은 이토록 가슴 아팠다. 하지만 나는 미국 월드컵에서 한국이 축구 강호들과 당당히 맞서 싸우는 불굴의 투지를 봤다. 한국이 언젠가는 세계축구의 중심에 우뚝 설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본 것이다. 그리고 8년 후 한국이 2002 한·일 월드컵에서 온 국민의 숙원이었던 1승은 물론 16강을 넘어 4강 진출까지 달성하면서 마침내 희망은 열매를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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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서 열린 가나와의 친선경기 직전 포즈를 취한 한국 대표팀 선수들 ⓒ 독일월드컵 공식 홈페이지


이제는 2006독일월드컵이다. 다시 새로운 도전의 문이 열린 것이다. 국민은 이번 월드컵에서 한국이 한·일 월드컵 4강 신화를 재연하기를 염원하지만 우려의 목소리도 높은 것이 사실이다. 개인적으로 많은 것을 바라지는 않는다. 다만 미국 월드컵을 보던 나처럼, 이번 2006독일월드컵을 생애 첫 월드컵으로 맞이한 소년, 소녀들에게 다시 한 번 불굴의 투지를 보여주기를 기원할 따름이다.


이덕원


- 덧붙이는 글 -

2006년 6월12일 작성.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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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볍게 한숨을 쉬며) 그 경우에는 시스템이 결코 완성되지

월드컵, 어느 방송으로 볼까?

p l a n 2007/07/11 11:49 posted by 곱씹다

2006독일월드컵 방송사 중계 비교


월드컵이 코앞으로 다가온 지금, 축구 팬들은 어떻게 한국대표팀의 활약을 지켜볼 것인지 행복한 고민에 빠져있다. 다시 말해 한국대표팀의 2002년 영광 재현을 어느 '방송사'를 통해 지켜볼 것인지, 어느 방송사가 한국대표팀 경기에서 '아드보카트호의 전술'과 '선수 개개인의 컨디션'을 '정확하게' 전해줄 것인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더욱이 이번 2006독일월드컵은 어느 때보다 월드컵 중계를 놓고 방송 3사의 경쟁이 치열하다. 그럴 만도 한 것이 방송사들에 월드컵 중계는 '월드컵 특수'라고 할 만큼 '수천억 원'이 달린 광고시장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번 월드컵에서 한국대표팀이 2002년의 영광을 재현할 수 있을 것인지 국민의 관심은 2002년 못지않게 뜨겁다.


그런 만큼 방송사들은 이번 월드컵 특수를 누리기 위해 '시청률' 확보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특히 시청률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해설가' 영입에서는 고도의 전략마저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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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부터 차범근(MBC), 신문선(SBS), 이용수(KBS) 위원.


먼저 2002한일월드컵 당시 가장 높은 시청률을 기록해 월드컵 특수를 톡톡히 누린 MBC는 기존의 축구 스타 출신 김주성 위원과 더불어 젊은 해설가 서형욱 위원이 해설을 맡는다. 또 MBC가 2002년에 월드컵 중계 시청률 1위를 하는 데 일등공신 역할을 한 차범근 위원도 해설을 맡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차 감독은 2002년과 달리 현재 수원 삼성 감독을 맡고 있어서 프로경기가 끝나는 6월 초까지 대외발표를 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공식적으로 밝히지 않는 것일 뿐 월드컵이 시작되면 해설진으로 합류할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이에 따라 MBC는 차범근 위원이 한국전 경기를, 김주성 위원과 서형욱 위원이 다른 조 경기를 해설할 것으로 예상된다.


SBS는 이번 월드컵을 위해 가장 오랜 기간 치밀하게 준비해왔다. SBS는 재치 있는 입담으로 유명한 기존의 신문선 위원이 조별 예선 한국 경기를, 젊은 층 사이에 팬을 형성하고 있는 박문성 위원이 다른 조 빅게임을 중계할 것으로 보인다.

타 방송사에 비해 2002년 당시 가장 저조한 시청률을 기록한 KBS는 이용수 세종대 교수를 해설위원으로 내세운다. 2002한일월드컵 당시 기술위원장을 맡았던 그는 독일월드컵 주전 한국대표선수들을 가장 눈앞에서 지켜봤다. 이 위원은 침착하고 편안한 목소리로 경기상황을 꼼꼼히 분석해주는 스타일의 해설가다. 또 KBS는 한국 경기 외에 축구팬들의 관심이 높은 다른 조의 경기들은 국외축구 전문가 한준희 위원에게 해설을 맡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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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부터 김태영(MBC), 황선홍(SBS), 유상철(KBS).


하지만 2006독일월드컵 중계방송 승패의 변수는 2002년 당시 선수로 뛰다 해설가로 변신한 선수들이다. 방송사들은 2002년의 감동과 추억을 공략해 시청률을 높이고자 저마다 관련 인물을 영입하기 위해 경쟁했다. 가장 먼저 SBS가 지난 3월 14일 2002년 월드컵 4강의 주역 황선홍을 영입했고, 뒤이어 KBS가 4월 23일 유상철을, 25일 MBC가 김태영을 끌어들였다.


황선홍, 유상철, 김태영은 각자 방송 3사에서 보조 해설위원으로 활동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실상 메인 해설위원 신문선, 이용수, 차범근 위원에 비해 해설 비중은 작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방송사의 의도대로 시청자들에게는 2002년의 주역이 2006년의 영광 재현을 함께 한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

월드컵 특수를 놓고 벌일 2006독일월드컵의 중계방송은 연패를 노리는 MBC와 오랜 준비를 마친 SBS의 재대결로 압축된다. KBS는 이용수 위원이 타 방송사의 차범근, 신문선 위원에 비해 인지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2002년 꼴찌 오명을 벗기에는 역부족인 듯싶다.


MBC와 SBS의 재대결에서는 메인 해설위원으로 선수에 이어 감독까지 현장 경험이 풍부한 MBC 차범근 위원이 만담형 해설의 달인 SBS 신문선 위원에게 다시 한 번 승리를 거둘 것으로 예상된다. 스타 선수 출신이자, 1998프랑스월드컵 사령탑도 맡았던 만큼 차범근 위원의 해설에 대한 시청자들의 신뢰가 높기 때문이다.

특히 2002년 월드컵 당시 평소 침착한 차범근 위원이 한국대표팀의 선전에 흥분하는 모습은 시청자들에게 감동을 배가하기에 충분했다. 더욱이 차범근 감독은 당시 MBC의 '이경규가 간다'를 통해 하프타임 중 진땀을 흘리며 최창섭 캐스터와 주고받던 중계 뒷이야기가 방송돼 시청자들에게 친근하게 다가왔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 2002년 스타들의 해설가 변신이라는 변수를 무시할 수 없다. 특히 2002년 한국대표팀의 정신적 맏형이자, 폴란드전 첫 골의 주인공 황선홍이 포진한 SBS는 그 효과를 톡톡히 볼 것으로 보인다. 지난 2월 한 여론조사기관이 실시한 해설가 선호도 조사에 따르면 황선홍이 9.5%로 신문선, 차범근, 이용수 위원(10.5%)에 이어 4위를 차지할 만큼 그의 변신에 팬들의 관심이 많다.


실제로 감동의 순간, 시청자에게 안내자 역할을 하는 사람이 축구 해설위원이다. 2002년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한 현장을 누구보다 생생하고 정확하게 전해 시청자들을 사로잡을 해설위원이 누구일지 '6월13일' 그 귀추가 주목된다.

이덕원


- 덧붙이는 글 -

2006년 5월13일 작성.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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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점 매기기'가 대세?

c o l u m n 2007/07/06 01:58 posted by 곱씹다

언젠가부터 '평점'이 미디어를 통해 자주 등장했는데 사실 그 시작은 '별'로 매기는 '영화 평점'이었다. 미국에서 별 네 개 만점으로 매기던 영화 평점은 90년대 중반 한국으로 건너오며 지금 별 다섯 개 만점으로 매기는 영화평점으로 전해진 것이다.

이제 영화 평점은 인터넷의 보편화와 함께 그 영향력이 더욱 커져 영화 흥행 여부에 직결되는 요소이기도 다. 그래서 작년에는 한 포털 사이트에서는 네티즌들이 영화 평점을 조작하는 사건마저 있었다.


하지만 작년 말부터 인터넷 뉴스를 비롯해 TV 방송에서 '평점'이 더욱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 중심에는 박지성, 이영표 선수의 프리미어리그 진출이 있다.

유럽에서는 축구경기가 끝나고 언론사들이 10점 만점으로 선수들의 활약을 평점으로 매기는데 한국인 최초로 프리미어리그에 진출한 박지성, 이영표 선수에 대한 뜨거운 관심은 두 선수의 평점에까지 이어진 것이다. 게다가 두 선수가 국민들의 기대 이상으로 좋은 활약을 펼쳐 종종 팀 내에서 돋보이는 높은 평점도 받자 그 관심은 더욱 커졌다.


이에 국내 언론들은 앞 다퉈 박지성, 이영표 선수의 평점을 전하고 최근 들어서는 방송 뉴스나 인터넷 기사에서 평점을 핵심적으로 보도하기도 한다. 문제는 경기 내용과 두 선수의 활약을 구체적으로 전하기보다 각 언론사의 주관적인 평점에 지나치게 중점적으로 보도함으로써 주객이 전도되었다는 것이다. 사실 유럽리그에서는 평점이 TV 방송과 인터넷 뉴스에서 부가적으로 언급할 따름인데 말이다.


또 얼마 전부터는 평점을 포털사이트를 비롯한 인터넷일간지에서 하나의 콘텐츠로, TV 방송에서 프로그램 보조 방식으로 다루기 시작했다. 인터넷을 보면 각종 포털사이트와 인터넷일간지에서는 국내 축구전문가가 매기는 평점과 네티즌들이 매기는 평점을 수없이 쏟아진다. 그리고 TV 방송에서는 경기 중 ARS나 문자메시지를 통해 시청자들이 매기는 평점이 있다.

특히 문제는 TV 방송에서 시청자들이 매기는 평점에 있다. 지난 3월에 있었던 한국 대표 팀과 앙골라 전에서 보면 경기를 생중계하며 시청자들에게 문자메시지를 통해 평점을 매기게 했다. 스포츠에서 평점은 경기가 끝나고 출전했던 선수의 활약을 매기는 것인데 경기가 끝나기도 전에 보면서 점수를 내라는 것은 뭔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것이었다.

도무지 경기 시작 후 딱 지금까지만 잘라 선수들의 컨디션을 평점을 매기라는 것인지, 좋아하는 선수를 고르라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결국 경기 내내 좋은 모습을 보여준 선수보다 다른 선수가 더 높은 평점을 받기도 하여 결과 역시 의도만큼 엉뚱했다.


물론 영화나 프리미어리그나 보지 못한 이들에게 평점은 쉽고 간결하게 정보를 제공한다. 그런 만큼 각종 미디어는 시청자, 네티즌의 억지스러운 참여 유도보다는 좀 더 정확하고 신뢰성이 있는 평점을 제공해야 할 것이며, 결코 심층적인 정보 제공보다 부가적인 평점이 주가 되어서는 안 될 일이다.

눈앞으로 다가온 월드컵에서도 '지나친' 평점 매기기가 계속될까 우려된다.

이덕원


- 덧붙이는 글 -


2006년 4월5일 작성.


한림대 인터넷미디어 전공 웹진 '도발'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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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볍게 한숨을 쉬며) 그 경우에는 시스템이 결코 완성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