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009/03/19 비루한 현실을 달콤하게 채색한 '발리우드'풍 동화 (3)
  2. 2007/12/29 제2의 <해리포터>를 찾는 스튜디오판 ‘기묘한 이야기’ (2)

비루한 현실을 달콤하게 채색한 '발리우드'풍 동화

r e v i e w 2009/03/19 14:58 posted by 곱씹다
거액의 상금이 걸린 인도의 TV 퀴즈쇼 '누가 백만장자가 되고 싶은가'에서, 최종 라운드까지 오른 소년 자말 말릭(데브 파텔)이 부정행위를 의심받고 경찰에 넘겨진다. 이유는 교수, 변호사 같은 지식인들도 쩔쩔매는 수준의 문제들을 뭄바이 빈민가에서 태어나 정규교육도 받지 못한 전화상담원 보조가 맞혔다는 것. 그러나 경찰 조사에서 그는 자신이 살아온 녹록지 않았던 삶의 굽이굽이가 곧 문제를 푸는 열쇠였음을 밝힌다. 또 그가 퀴즈쇼에 출연한 '남다른' 목적이 스무고개처럼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한다.


올해 아카데미영화제에서 작품상을 비롯해 총 8개 부문을 휩쓴 화제작 <슬럼독 밀리어네어>(Slumdog Millionair)는 의외로 작품성에서는 그다지 빼어난 영화가 아니다. 지난 몇 년간 아카데미가 주목했던 어느 정도 진지한 영화들과 달리 그저 유쾌한 오락 영화에 가깝다는 말이다. 게다가 스케일 면에서도 소박한 축에 속하는 영화다. 그런데도 이 영화가 작품상을 거머쥘 수 있었던 건, 그만큼 여느 때보다 대중성과 이국적 정취에서 큰 점수를 딴 덕분으로 보인다.



더군다나 두 결정적 요인은 하나의 키워드로 만나기도 하는데, '발리우드'(인도의 영화 산업)가 바로 그것이다. 영국 출신의 대니 보일 감독은 인도를 배경으로 한 비카스 스와루프의 <Q&A>를 영화화하면서 공교롭게도 발리우드의 전형적인 스타일을 따랐다. 작가 사이먼 뷰포이가 원작 소설을 각색해 발리우드의 특색이라고 할 수 있는 애절한 멜로라인과 권선징악의 해피엔딩 등을 한결 부각한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일견 성장영화 같은 이 영화를 정작 관통하는 건 자말와 라타카(프리다 핀토)의 멜로다. 그리고 이들의 멜로라인을 도드라지게 하는 영화적 장치, 즉 사랑의 훼방꾼들도 하나같이 비참한 최후를 맞는 식이다.


그런가 하면 스타 배우 한 명 없이 인도 배우들을 위주로 이뤄진 캐스팅이나 발리우드 특유의 뮤지컬 같은 마지막 시퀀스, 인도의 전통 악기에 테크노를 접목한 음악 등은 이국적 정취에 한껏 매료되게 한다.(그나마 낯익은 얼굴이 영국 e4에서 2007년부터 방영됐던 드라마 <스킨스>(Skins) 시즌 1·2의 무슬림 앤워 카랄 역을 맡아 이름을 알린 데브 파텔이다) 자말의 삶에서 엿볼 수 있는 인도의 빈곤과 종교적 갈등, 인권 문제도 마찬가지로 서정적으로 그려지며 한껏 페이소스를 자아낸다. 그런데 이 영화의 한계도 여기서 기인한다. 결핍된 단면을 들여다보는 시선이 다소 관조적이기 때문이다. 영락없이 이방인의 거리가 느껴져 아쉬운 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안전하게 잘 만든 오락 영화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기본적으로 스토리텔링 솜씨가 훌륭하기 때문이다. 이때 가장 돋보이는 게 탄탄한 플롯인데, 영화 후반까지 경찰의 추궁을 받는 자말의 현재 시점과 그의 해명에 따른 플래시백이 교차해 퀴즈쇼를 풀어가는 것처럼 흥미를 불러일으키고 긴장감을 고조한다. 특히 이야기가 하나의 시점으로 포개어지기 전후에 얼핏 '영심이'가 겹쳐 보이는 퀴즈쇼의 후반 라운드는 압권이다. 소신을 따르는 바람에 극적으로 행운을 잡는 데브 파텔의 모습이, 이 영화의 메시지를 감칠맛 나게 응축할뿐더러 휴먼 드라마로써의 감동을 남김없이 이끌어 내는 것이다. 만고불변의 진리지만 역설적으로 그렇기에 새롭지 않은 메시지가 퀴즈쇼라는 소재를 잘 활용하는 덕택에 색다르게 전해지는 셈이다.


그러고 보면 이 영화의 대중성은 거의 완전하다.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어른이라면 한번쯤 기대고 싶은 동화기 때문이다. 다만 이 영화가 들춘 인도의 환부만은 결코 "영화 속 이야기니까"라고 덮어버릴 수 없는, '엄연한 현실'이다. 물론 여기에 사실주의적 카메라를 들이대는 건 애당초 이 영화의 몫이 아니었으니 가타부타할 문제는 아닐 터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비루한 현실이 달콤한 동화를 채색하는 도구로만 쓰였을 때, 아무래도 뒷맛은 개운치 않다. 


이덕원


- 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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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시스템이 지금 당장 필요하단 말이요! 프로그래머를 열명 투입하면 어떻겠소?프로그래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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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브원 KG엔지니어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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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년이 걸릴 것입니다.
    PM

제2의 <해리포터>를 찾는 스튜디오판 ‘기묘한 이야기’

r e v i e w 2007/12/29 13:45 posted by 곱씹다

어느 여름날 밤 기차역 대합실. 폭우로 발이 묶인 승객들 사이, 한 청년이 어색한 분위기를 깨고자 오싹한 이야기를 건네기 시작한다. 그의 이야기가 끝나자, 이번엔 선글라스를 낀 사나이가 나서 이야기를 마무리 짓더니 또 다른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어느덧 하나둘 모여든 사람들은 이어지는 ‘기묘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스튜디오판 <기묘한 이야기> 

옴니버스영화 <기묘한 이야기>의 얼개다. <기묘한 이야기>는 이처럼 폭우라는 상황과 기차역 대합실이라는 장소를 설정해 생면부지인 사람들을 한자리에 모은 뒤, 그중 몇몇을 스토리텔러로 세워 ‘기묘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영화는 1990년 일본 후지TV에서 시작해 10년 간 인기리에 방영한 TV프로그램 <세상의 기묘한 이야기>의 극장판이다. 

철 지난 영화 이야기를 꺼낸 건 한 TV프로그램을 설명하기 위해서다. 현재 KBS 1TV에서 방영중인 <이야기발전소>는 마치 스튜디오판 <기묘한 이야기> 같다. 차이가 있다면, 스토리텔러를 비롯해 일차적 청중이 스튜디오에 있고, 아마추어 스토리텔러가 직접 창작한 이야기라는 점 정도다. 

그럼에도 <이야기발전소>는 분명히 <기묘한 이야기>의 분위기를 풍긴다. 먼저 스토리텔러의 이야기와 재연 화면이 어우러지는 스토리텔링 방식이 그렇다. 물론 이야기 중간에 내레이션이 스토리텔러를 대신하기도 하지만, 그 비중과 타이밍은 몰입을 헤치지 않는다.  

또 역설적으로 <기묘한 이야기>와는 달리 아마추어 스토리텔러가 창작한 이야기라는 점을 꼽을 수 있다. 기묘한 이야기들은 한 편의 영화나 소설에 비해 거창하지 않다. 짜임새는 부족하되, 설정이 참신할 뿐. 그러니 ‘기묘’한 것이다. <이야기발전소>의 이야기가 이런 기묘함 닮은 이유는 스토리텔러들의 아마추어리즘 덕분이라는 말이다. 

제2의 <해리포터>를 발굴하는 ‘스토리텔링 클럽’ 

그렇다고 <이야기발전소>가 스튜디오판 <기묘한 이야기>에 그치는 건 아니다. 외려 그보다 야심 찬 포부를 지니고 있다. ‘스토리텔링 클럽’으로서 가능성 있는 이야기를 발굴해 <해리포터> 시리즈같이 세계를 매혹시킬 만한 문화콘텐츠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야기발전소>는 프로그램이 내건 기치처럼 문화산업 시대를 맞아 스토리텔링의 폭을 넓힌다는 점에서 유의미하다. 많은 스토리텔링 관련 공모전이 있지만, 아마추어 스토리텔러에겐 여전히 문턱이 높기만 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PC통신에서 탄생한 소설·영화 <엽기적인 그녀>나 인터넷에서 뜬 인기 작가 ‘귀여니(이윤세)’의 사례도 일반인에겐 결코 일반적이지 않은 일이다. 

결국 완성도가 부족하거나 재수가 좋지 않다면, 보통 사람들의 좋은 아이디어는 사장될 수밖에 없을 터. 그중에는 다듬고 보탠다면 '제2의 <해리포터>'가 될 보물이 있을 수도 있는데 말이다.

이를 위해 프로그램은 매주 3팀의 스토리텔러들이 출연해 자신이 써온 이야기를 들려주고, 전문 심사위원들과 방청객의 평가를 받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 중 1위를 한 스토리텔러에겐 3연승까지 매번 소정의 창작 지원금이 주어진다.  

가까이 영화 <장화, 홍련>, <디워>와 멀리 <반지의 제왕> 시리즈가 그랬듯, 이야기는 사전에 제시되는 전설을 모티브로 한다. 이를테면 ‘문바위 전설’은 ‘인형의 집’이라는 으스스한 이야기로, ‘청의동자 전설’은 ‘과부들’이라는 엽기적인 이야기로 변모한다. 

참신함이 주는 매력, 검증 시스템은 강화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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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BS 1TV <이야기발전소> 홈페이지의 시청자게시판에 올라온 항의 글. ⓒ KBS &#13;&#10;

물론 원대한 목표는 기본적으로 이야기의 재미를 전제로 할 때 성립한다. 더불어 그래야만 TV프로그램으로서의 당위성 또한 존재한다. 이런 맥락에서 <문화지대>의 한 코너에서 독립해 지난 28일 방송으로 7회를 넘긴 <이야기발전소>는 비교적 순항을 하고 있다.

이유는 단연 특유의 '참신함' 덕분이다. 물론 일부는 전형성에서 벗어나지 못해 식상하기도 하지만, 이따금 돋보이는 아이디어의 이야기가 색다른 재미를 주기 때문이다. 이런 이야기는 뻔한 드라마·영화에 신물이 난 사람들에게 10분에서 15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맛볼 수 있는 신선한 자극이다.      
 

이를테면, 지난 28일 방송 중 ‘자린고비 전설’을 이야기 주제로 삼은 ‘밧줄, 소금, 매달린 사람’만 해도 ‘발상의 전환’이 돋보였다. 이야기는 한 사이코 개그맨이 웃음에 인색한 관객을 상대로 연쇄 살인을 저지른다는 내용이다. “쳐다보기만 하고 먹지는 않는 자린고비에 대한 굴비의 복수”라는 관점과 그럴 듯한 반전은 부족한 짜임새를 채우고도 남았다. 

반면, <이야기발전소>에 제기된 문제도 있다. 전형성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야기의 질적인 부분이야 보다 많은 스토리텔러의 참여를 이끌어내면 나아질 일. 문제는 기본적으로 담보돼야 할 '독창성'부터 흔들렸다는 점이다.  

<이야기발전소>는 11월8일 첫 방송에서부터, 표절 의혹에 휘말렸다. 이날 방송한 이야기 중 ‘우렁각시 전설’을 이야기 주제로 한 ‘그들의 이야기’가 '<세상의 기묘한 이야기> 2005 봄 특별편'인 ‘미녀캔’과 너무 흡사하다는 시청자들의 지적이 이어진 것이다.  

이에 제작진은 “출연자의 개인적인 사정으로 의견 청취가 어려운 상황”이라며 조만간 “진위 여부 확인과 함께 제작진의 의견을 게시”할 예정이다. 

<이야기발전소>에 주목하는 이유 

<이야기발전소>의 이야기에 주목하는 이유는 <해리포터>, <반지의 제왕>처럼 대단한 이야기는 아닐지언정 독창성이란 내피를 입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명작’ 역시 이런 어설픈 이야기에서 시작됐을 터이다.  

언젠가 <이야기발전소>에서 많은 스토리텔러의 이야기가 완성도란 외피를 덧입고 세계로 나아가는 문화콘텐츠가 되길 기대해 본다. 


이덕원

- 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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