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008/07/28 길티 플레져(guilty pleasure) (3)
  2. 2007/07/17 사연이 있는 음식, '돈가스'와 '된장죽' (1)
  3. 2007/07/12 “주황색 천막만 보면 그냥 지나칠 수가 없더라”

길티 플레져(guilty pleasure)

e s s a y 2008/07/28 18:26 posted by 곱씹다

벌써 4년 전 일이다. 그해 겨울, 나는 신문사 인턴을 하느라 상경해 종로의 한 고시원에 머무르고 있었다. 인턴 초기 별로 맡겨지는 일이 없어 늘 칼퇴근이었지만, 퇴근을 해도 딱히 할 일은 없었다. 가뜩이나 대부분의 친구가 군복무 중이었던 시기에, 더군다나 서울은 철저한 타향이었던 까닭이다.


역시 마지못해 고시원 골방으로 직행하던 어느 날, 요기 거리를 찾아 들른 편의점에서 나의 ‘길티 플레져(대놓고 말하기에 부끄러운 악취미)’는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헛헛한 마음을 달래고자 선뜻 두 병의 소주를 손에 쥐고 만 것. 물론 그 순간 다른 손에 든 요기 거리는 이미 ‘안주 거리’가 돼버렸다.


그렇다. 나의 길티 플레져는 ‘집에서 홀로 마시는 술’이다. 정확히 말하면, 오로지 ‘소주’다. 이것이 길티인 이유이기도 하다. 맥주나 와인 따위로 가볍게 목을 적시는 정도였다면 애초 길티가 아니었을 테니.



그렇게 마시는 술은 여느 사람들의 눈에는 부정적으로만 보이나 보다. “웬 청승이냐”며 처량하게 보거나 ‘알코올중독’이 아닌지 걱정하는 눈이다. 이를테면 기껏 닭갈비와 소주를 사다 한상 차리고 배경음악까지 선곡해 첫잔을 비울라치면, 때마침 전화를 한 친구 녀석이 “왜 혼자 술을 마시느냐”며 한사코 ‘함께 마셔 주겠다’는 식이다.


그렇다고 시도 때도 없이 들입다 그런 일를 즐기는 것은 결코 아니다. 내가 집에서 홀로 술을 마시는 경우는 ‘깊은 고민에 빠져있을 때’에 한해서다. 더욱이 친구의 조언보다는 스스로 결단을 내려야 하는 중대한 순간이다. 한마디로 ‘내가 나를 모르는데, 넌들 나를 알겠느냐’쯤 되겠다.


실제로 골방에서 길티뿐만 아니라 ‘빈티’마저 내며 핫도그에 소주를 곁들였던 그해 겨울도 인턴기자로서의 부족한 능력을 절감한 시기였다. 그러나 그날의 술자리는 진정 ‘나는 누구인가’를 성찰하게 했고 비로소 막잔에 이르러서는 새로운 도전이라는 답을 내놨다.

김훈은 장편소설 <칼의 노래>에서 “술은 먼 것을 가깝게 당겨준다”고 했다. 나의 길티 플레져는 술의 이런 속성을 빌려 의식(意識)으로 낙관할 때 무의식을 당겨 비관해 보고, 반대로 의식으로 비관할 때 무의식을 당겨 낙관해 보는 시간인 셈이다.

인생은 나는 누구인가를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한다. 결국 모든 문제는 나는 누구인가에서 비롯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의 길티 플레져는 인생이라는 여정에서 잠시 멈춰서 지나온 길과 나아갈 길을 헤아리는 숭고한 ‘의식(儀式)’인 셈이다. 그래서 이런 의식은 나의 ‘플레져’다.  


이덕원


- 덧붙이는 글 -


2007년 6월11일 작성.

  1. Commented by 은재 at 2009/01/13 21:08

    혼자 마시는 술은 너무 빨리 취해요. >,.<

    • Commented by Favicon of http://gobsibda.com BlogIcon 곱씹다 at 2009/01/14 03:15

      정답!ㅋㅋ 그게 문제라면 문제지요~ '길티'인 이유 중 하나랍니다. 은재님은 참으시길...^^;

  2. Commented by Favicon of http://www.pandawill.com/mobile-phone-c1/wifi-cell-phone.html BlogIcon wifi phone at 2011/10/08 11:30

    건설취업

사연이 있는 음식, '돈가스'와 '된장죽'

e s s a y 2007/07/17 19:39 posted by 곱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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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니는 피자나 돈가스와 함께 소주를 마시면 다음날 속이 편하다고 하신다. ⓒ 이덕원


며칠 전, 학교 앞을 지나던 길에 돈가스를 사서 집으로 왔다. 늦은 저녁 시간, 출출해질 밤을 대비해 산 간식이기도 했지만, 돈가스는 우리 어머니가 가장 좋아하시는 음식 중 하나기 때문이었다. 사실 어머니는 넉넉한 양에 구색을 다 갖추고도 3,500원이라는 그리 비싸지 않은 가격에 먹을 수 있는 그곳의 돈가스만을 맛있다고 하신다.

늘 그렇듯 밤참은 소주 안주가 됐고 모처럼 가족들은 모여앉아 술도 마음도 나눴다. 그런데 돈가스를 맛있게 드시는 어머니를 보는데 문득 가슴 한구석에 알알이 박혀있던 옛 기억이 떠올랐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어머니가 돈가스를 싫어하시던 때가 고스란히 떠올랐다.

어머니가 돈가스를 싫어하시던 시절


십수 년 전쯤, 나는 며칠 동안 어머니에게 떼를 쓴 끝에 돈가스를 먹으러 갔다. 그런데 예전과 달리 어머니는 돈가스를 하나만 시키고 드시지 않았다. 열 살가량 어린아이였지만 그래도 전교에서 내로라하는 덩치여서 웬만한 성인 목은 족히 먹어치웠는데도 말이다.

결국, 돈가스는 온전히 내 몫이었다. 흐릿한 기억이지만 어머니는 허겁지겁 먹는 아들의 권유에도 전혀 입을 대지 않으셨다. 지금은 누구보다 돈가스를 좋아하시는 어머니가 한때는 그렇게 돈가스를 싫어하셨던 것이다. 

당시 어머니는 돈가스를 싫어하실 수밖에 없었다. 아니, 싫어하시는 척할 수밖에 없었다는 게 맞는 말이겠다. 사실 그 무렵 아버지가 하시던 사업이 잘못돼 생활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날 이후 나는 하교 길에 친구들과 방방을 타는 대신 학교 앞에서 지키고 있던 아저씨 아줌마를 시장 골목골목을 돌며 따돌리는 놀이를 했고, 한겨울 연탄을 때지 못해 춥다고 울며불며 잠 못 이루었다. 그리고 그렇게 울던 아이를 어머니는 말 없이 안아주셨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했던 된장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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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된장죽은 물에 불린 쌀을 끌이다 된장을 풀고 얼갈이배추, 감자 등을 넣어 조리한다. ⓒ 이덕원


무엇보다 철없던 어린아이에게 가장 크게 다가온 어려움은 이제는 아무리 떼를 써도 돈가스는커녕 그 어떤 맛있는 음식도 먹을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매일 정체를 알 수 없는 죽을 먹어야 했고, 된장을 풀고 배추를 넣고 끌인 게 전부인 그 죽이 어린아이는 세상에서 제일 싫었다.

그리고 십여 년이 지난 지금 아버지와 어머니의 노력으로 어머니는 돈가스를 다시 좋아하시게 됐고, 나는 다시 반찬투정을 한다. 그동안 어릴 적 먹던 된장죽은 정말이지 생각조차 하기 싫었다. 그리고 어머니도 좀처럼 된장죽을 드시지 않았다.

돈가스와 소주를 다 비우고 아버지와 어머니도 그만큼 얼큰하게 취하셨을 즈음 나는 다짜고짜 어머니에게 조만간 된장죽을 해먹자고 졸랐다. 어머니는 뜻밖이라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리셨지만 정말 된장죽이 먹고 싶었다. 그리고 그 사이 내 입맛이 변해서인지, 상황이 달라져서인지 십여 년 만에 먹은 된장죽의 맛은 나름 별미였다. 

된장죽 한 대접을 다 비우고, 문득 자장면이 싫다고 하셨다는 유행가 노랫말 속 어머니는 우리 어머니들의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덕원


- 덧붙이는 글 -

2006년 9월16일 작성.

<미디어다음> '블로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1. Commented by Favicon of http://www.pandawill.com/apple-accessories-c388/ipad-ipad-2-c350.html BlogIcon ipad accessories at 2011/10/08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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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황색 천막만 보면 그냥 지나칠 수가 없더라”

s k e t c h 2007/07/12 02:15 posted by 곱씹다

‘포장마차’ 속 별별 사람들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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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각역 뒷골목에 위치한 한 포장마차. ⓒ 이덕원


네온사인 휘황한 현대식 건물 사이 문화재도 아니면서 수십 년 전 옛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것이 있다면, 아마도 포장마차일 것이다. 옛 연인의 아련한 얼굴, 쇠약해지시는 부모님의 모습, 직장 상사의 쓴소리. 사람들은 포장마차에서 고단하고 척박한 삶을 소주 한잔에 털어 버린다.

종각역 뒷골목 한편에 자리 잡은 포장마차도 옛 정취를 오롯이 간직한 채 사람들의 시름을 달래주고 있었다.
이른 저녁, 포장마차를 즐겨 찾는다는 한 중년 남성은 퇴근길 후덕한 주인아주머니의 인심을 안주 삼아 소주 한 병을 비우고 있었다. "옛날부터 이상하게 포장마차 주황색 천막만 보면 그냥 치나 칠 수가 없더라"는 그는 "가슴이 답답할 때 간단히 혼자 마시기에 포장마차만 한 곳이 없다"며 포장마차에 대한 애정을 표현했다. 이어 그는 "예전 포장마차는 가격이 저렴해 서민적이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고 아쉬워하기도 했다.

개시를 하고 나자 한 남성이 만취 상태로 포장마차 안으로 들어왔다. 손님을 맞는 주인 어머니의 표정이 이상하다 싶더니 "일찍도 출근했네, 끝날 때 가려고 또 왔어?"라는 말이 이어진다. 뭔가 심상치 않던 그는 "내 돈 내놔. 내 핸드폰 내놔"라며 주인 어머니에게 윽박기 시작했다.
결국 그는 주인 어머니에게 욕을 하며 행패를 부렸고 이내 실랑이 끝에 삼백 원을 내고 제 손으로 소주 한 병을 꺼내서는 어묵 국물 서비스까지 받으며 술을 마셨다. 그는 매일같이 찾아와 술주정을 부리고 영업시간이 끝날 때가 돼서야 가는 단골 아닌 단골이라고 했다. 얼마 전에 두고 간 휴대전화를 돌려 줬는데 그때부터 휴대전화를 내놓으라며 이렇게 악다구니 같은 술주정을 부린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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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별별 사람에 속도 많이 썩는다'는 주인아주머니 ⓒ 이덕원


많은 취객을 상대하는 일인 만큼 스트레스도 많이 받겠다는 질문에 주인아주머니는 "별별 사람이 많아서 속도 많이 썩는다"며 가지각색 손님들 이야기를 꺼내 놨다. 혼자 와서 화장실이 어디냐고 묻고는 가서 오지 않는 손님부터 무전취식을 하는 유형도 가지가지라고 한다. 한 번은 한 젊은이가 쇼핑백을 떡 하니 놓고 전화 좀하고 오겠다고 나가 도망을 쳐서 쇼핑백을 열어 보았더니 웬 아주머니의 헌 옷만이 덩그러니 들어 있다는 이야기. 젊었을 적 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우다가 부도가 나자 부인과 자식에게 버림받고 매일같이 공짜 술을 얻으러 온다는 아저씨 이야기. 책 한 권으로도 못 엮어낼 만큼 많은 사람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주인아주머니의 포장마차 옆쪽에 붙어 있는 또 다른 포장마차. 이곳은 주인아주머니의 조카인 정병용(40)씨가 운영하고 있다. 정씨는 다니던 직장이 불안해 3년 전부터 포장마차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정씨는 영업이 끝나는 새벽 4시부터 한 시간에 걸쳐 철거를 하고 오전 6시에나 집에 귀가해 7시가 넘어서야 잠에 든다고 한다. 이렇게 남들과 반대로 생활하는 그는 오후 2시에 일어나 오징어와 대합 등을 손질하고 장사 재료도 주문하면서 저녁 장사를 준비한다. 그는 그나마 영업 준비도 "옛날과 달리 요즈음은 따로 음식재료를 전문으로 대주는 곳이 있고 멀리서 택배로도 물건을 주문"해 수월해졌다고 말했다.

정씨는 드라마나 영화에서 예의 나오는 불량배들의 횡포에 대해 "신시가지에서는 불량배들이 좋은 자리를 잡아놓고 그 몫을 내주는 명목으로 돈을 받는다"며 종로처럼 포장마차가 오래 있는 곳에서는 없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시청이나 구청의 무허가영업 단속도 "종로에 있는 노점상이 천여 명에 달하는 실정이고 그 부양가족까지 고려하자면 생계적으로 절박한 문제"라며 그런 만큼 "단속에 노점상들이 연대해 대응하기 때문에 비교적 수월해진 편"이라고 전했다.


또 정씨는 포장마차 운영을 하며 가장 큰 애로사항은 "물과 전기가 기본적으로 공급되지 않는 것"이라며 "물은 통에 길어 써야 하고, 전기는 멀리서 끌어다 쓴다. 게다가 포장마차를 이동하는 리어카 보관 장소가 마땅치 않아 애를 먹곤 한다"고 어려움을 털어놨다.
"막무가내로 반말하는 손님부터 윽박지르는 손님까지 이제 욕에도 익숙해졌다"는 정씨는 반면 "명절 때마다 상품권이니 뭐니 챙겨 주는 단골손님도 있어 그 따듯한 마음에 보람을 느낀다"며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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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장마차에는 '사람 냄새'라는 맛있는 안주가 있다. ⓒ 이덕원


‘퓨전포차’니 ‘오뎅바’니 하는 현대식 술집들이 거리에 즐비함에도 세상에 꺾일 때면 옛 향수 가득한 포장마차로 발길이 이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나 보다. 주황색 천막을 둘러치고 앉아 소주 한 잔 입안에 털어 넣으면 더 이상 시름은 시름이 아니고 아픔은 아픔이 아닌 것만 같은 착각이 드는 것이다. 이는 '사람 냄새'라는 맛있는 안주를 곁들여 마신 술에 취했기 때문이 아닐까.

이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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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2006년 2월13일 작성.

<미디어다음> '블로거뉴스'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