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008/09/02 돈과 사랑, 그 '달콤'한 욕망의 다른 빛깔 (2)
  2. 2007/11/22 ‘로맨티시스트’와 ‘충신’ 사이에 선 김처선 (1)

돈과 사랑, 그 '달콤'한 욕망의 다른 빛깔

r e v i e w 2008/09/02 20:43 posted by 곱씹다

고층 빌딩 위에서 굽어보는 카메라의 시선이 어둑한 거리의 한 지점에 살며시 닿는다. 뒤이어 다가간 그곳에서는 자살한 한 남자의 흔적이 ‘깨끗이’ 씻기고 있다. MBC 드라마 <달콤한 인생>은 첫 회부터 주인공 준수(이동욱)의 추락사를 밝히면서 시작한다. 자연스레 나머지 내용은 6개월 전으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자살하기까지 그의 삶이다. “세상에 정말 사랑 같은 게 있는 걸까? 목숨을 걸고 지킬 만한 가치가 있는, 그런 순수한 사랑.” 요컨대 그에게 그 기간은 자신이 던졌던 물음에 대한 답을 체득한, ‘유일’한 시간이었다. 


돈에서 비롯된 ‘미스터리’를 장애물로 세워 빛내는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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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인생>은 공통적으로 ‘달콤’한 욕망의 대상인 돈과 사랑의 전혀 다른 빛깔을 다룬다. 물론 이는 멜로드라마에서 한 몸처럼 자주 쓰이는 소재다. 욕망의 갈림길 앞에 선 인물이야말로 인간의 본성과 관계를 고스란히 드러내기 때문이다. 더구나 물질 만능주의가 팽배한 오늘날, 멜로드라마에서 “사랑이 밥 먹여 주냐”는 현실론과 “김중배의 다이아몬드가 그리도 좋더냐”는 이상론의 갈등은 불가피할 터이다. 그러나 이 드라마는 익숙한 소재를 다루되, 낯선 방식을 택한다. 통속적인 양자택일 구도를 전면에 설정하기보다는, 돈에서 비롯된 ‘미스터리’를 장애물로 세워 사랑의 가치를 빛내는 식이다. 그래서 미스터리를 제외하면 언뜻 르네 끌레망의 <태양은 가득히>가 비치기도 하지만, 이 드라마는 돈보다 ‘사랑’에 방점을 찍는다. 

미스터리는 친구 성구(정겨운)의 ‘추락사’와 준수의 연관성 여부다. 준수는 성구의 온갖 멸시에 열등감을 느끼면서도 돈 때문에 뒤치다꺼리를 하며 기생하던 존재. 그가 수상한 건 함께 간 오타루의 설산에서 성구가 죽었는데도, 사실을 숨긴 채 친구의 부를 대신 누린다는 점이다. 덕분에 표면적으로는 성구가 된 듯 보이지만, 그 이면엔 시나브로 조여 오는 죄책감에 성구에게서 벗어나지 못한다. 결국 그는 성구의 시체를 찾으러 다시 북해도로 향하고 여기서 우연히 ‘멜로’가 시작된다. 심지어 상대는 친구 다애와 불륜 관계인 동원(정보석)의 아내 혜진(오연수). 산산이 부서질 것 같았던 두 사람은 서로를 “세상과 연결해주는 유일한 끈”으로 여기고 운명적인 사랑에 빠지고 만다. 그래서 진짜 문제는 이때부터다. 그는 처음으로 간절히 살고 싶어지지만, 자신을 의심하는 성구의 아버지 강 회장(조경환)으로 인해 여의치 않은 것이다.


죄책감으로부터 벗어나 ‘깨끗’해지기 위한 선택 

 

그렇다한들, 종국에 준수는 자살을 택해야만 했을까? 아닌 게 아니라 사실만 놓고 봤을 때 그는 충분히 살길을 찾을 수 있었다. 마땅한 증거도 없었을뿐더러, 성구의 추락사를 조사한 퇴직 형사 박병식(백일섭)도 결과적으로는 되레 그의 결백을 뒷받침했기 때문이다. 범죄 여부를 떠나 혜진과 도피를 시도하거나, 하물며 죽였더라도 자수해서 광명을 찾는 방법이 있었던 셈이다. 그러나 알다시피 준수는 기어이 자살을 택한다. 그리고 그 이유는 극중 가장 흥미로운 관계인 준수와 다애 사이에서 찾을 수 있다. 명품으로 남에게 뽐내는 낙에 사는 다애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면서도 동원의 돈에 길들여져 헤어 나오지 못하는 인물. 이런 다애에 대한 준수의 마음은 악어새가 악어새를 보는 연민이다. 무의미한 욕망의 덫에 걸려 정작 유의미한 욕망을 지킬 수 없는 상황에 놓인 준수는, 다애에게 자신처럼 되기 전에 다시 시작하라고 충고한다. 이에 “사람도 빨래처럼 깨끗이 빨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다애의 푸념은 그의 것이기도 했다. 

 

이 드라마는 준수의 범죄 여부를 명확히 밝히지 않는다. 그러거나 말거나 사실 밖의 진실은 준수가 열등감에 성구를 죽이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결과적으로 성구의 손을 놓았다고 괴롭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준수가 돈이라는 무의미한 욕망으로 상징되는 성구, 즉 죄책감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은 ‘생의 소멸’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때 전반적으로 인물들을 관조하는 듯했던 카메라는 준수를 채근하기 시작한다. 첫 회의 첫 숏이었던 ‘부감숏’이 드라마 후반 빈번하게 등장하는 것이다. 준수 또한 고층 빌딩의 초고층 오피스텔 아래로 화분과 휴대전화를 던지고, 급기야는 몸까지 던지고 만다. 여기서 부감숏은 돈으로 쌓아올린 욕망의 탑 위에서 불안하게 서 있는 준수에 대한 메타포일 터이다. 마침내 준수는 제자리로 돌아감으로써, 또 마찬가지로 하강하는 빗줄기와 물줄기를 씻김으로써 비로소 깨끗해지는 것이다. 
 

문학적 드라마의 참신함, 플래시백의 과용


한 편의 소설을 보는 것 같았던 문학적 드라마 <달콤한 인생>의 시도는 일정 부분 유효했다.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지는 못했더라도 마니아층을 뚜렷하게 형성한 덕분이다. 이는 도저한 서사성에 대한 수요가 분명히 존재함을 드러낸 것이다. 그러나 문어체 대사와 내레이션 그리고 의식의 흐름 같은 문학적 특징은 드라마와의 간극을 보인 부분이기도 하다. 특히 미스터리 플롯이라곤 해도 시점은 지나치게 혼란스러웠다. 6개월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 뒤 다시 인물들의 플래시백이 번갈아 뒤섞이는 탓이다. 인물의 시점에 따르는 덕에 감정을 충실히 뽑아내는 건 분명하지만, 많은 시청자를 붙잡기 위해서는 좀 더 친절해질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왜 자꾸 선을 그으려고 하세요. 여기서 여기까지는 여기고 여기서부터 여기까지 있었던 일은 그저 과거의 한 지점이고, 뭐 그런 식으로 선을 그을 필요는 없잖아요. 그냥 지금 감정에 충실하면 안돼요?” 그래서 혜진에게 던진 준수의 대사는 이 드라마의 소박한 바람처럼 들린다.


<달콤한 인생>을 보는 내내 마음 한구석이 먹먹했던 건, 우리가 살아가는 드라마 밖 세상도 비슷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준수의 대사대로 “온 세상이 싸구려 욕망으로 넘쳐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드라마는 준수의 물음에 답하는 다애의 대사를 빌려 희망의 손짓을 한다. “그런 걸 왜 세상에서 구해? 그런 건 네 마음속에 있는 거라고.”


이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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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티시스트’와 ‘충신’ 사이에 선 김처선

r e v i e w 2007/11/22 14:37 posted by 곱씹다

SBS 대하사극 <왕과 나>엔 웬만한 드라마의 요소가 다 들어 있다. 이뤄질 수 없는 사랑, 권력을 둘러싼 공방, 인간적인 의리와 갈등, 게다가 출생의 비밀까지. <왕과 나>가 휴먼드라마와 멜로드라마, 정치드라마를 모두 표방하고 있는 이유다.

여러 요소는 ‘내시’라는 특수한 집단을 통해 극대화되는데, 그 중심엔 김처선(오만석 분)이라는 기구한 운명의 내시가 있다. 그는 사랑하는 여인을 지켜주고자 스스로 거세를 한 ‘로맨티시스트’이자, 권력 싸움으로 부모를 잃은 ‘피해자’이며, 임금에게 의리를 지키는 ‘충신’으로 그려진다.

반면, 김처선과 함께 극 전반을 이끌어가는 내시부의 수장 조치겸(전광렬 분)은 김처선의 사랑을 이용해 내시로 만든 장본인이자, 부모를 잃게 한 ‘가해자’이며, 권력을 위해선 물불을 가리지 않는 ‘정치 내시’. 이처럼 김처선과 조치겸은 운명적으로 물과 기름 같은 존재지만 부자의 연을 맺은 사이기도 하다.

이 중 지금까지 <왕과 나>의 인기 비결은 단연 김처선의 애절한 ‘사랑’과 조치겸의 ‘권력’ 공방에 있다. 실제 두 이야기는 마치 이륜차의 바퀴처럼 서로 균형을 유지하며 때론 정치드라마로, 때론 멜로드라마로 재미를 줬다.

50부작으로 기획된 <왕과 나>. 그런데 중반으로 접어들며 이런 ‘쌍끌이’가 위태로워 보인다. 한쪽을 받치던 주인공 김처선의 멜로 라인이 약해진 탓이다. 이는 줄곧 지켜온 월·화극의 왕좌를 MBC 특별기획드라마 <이산>에 내주고 만 이유와도 무관치 않은 듯싶다.

김처선은 윤소화를 ‘짝사랑’하나
   
본디 <왕과 나>의 뼈대를 이룬 멜로 라인은 김처선과 윤소화(구혜선 분), 성종(고주원 분)의 삼각관계. 그러나 윤소화와 성종의 합궁을 정점으로 김처선과 윤소화의 사랑은 이내 유명무실해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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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처선과 윤소화 어린시절. ⓒ SBS

책임은 먼저 윤소화에게 돌아간다. 자신을 챙겨주는 김처선에게 ‘알듯 모를 듯’ 이성의 감정을 느낀 그녀. 궐에 들어오기 전, 윤소화는 김처선을 일컬어 “내 마음을 가장 잘 알아주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녀의 감정은 궐에 들어온 뒤 사경을 헤매며 꾸는 꿈에서까지만 해도 절절했다. 

문제는 이때부터. “임금님을 만나 뵙게 되었는데 어찌 이리 마음이 답답하고 겁이 나는지 모르겠구나. 네가 옆에 있다면 크게 의지가 되었을 것을.” 후궁으로 간택 받은 윤소화는 그토록 연모했던 성종이건만 뜻밖에도 처음엔 합궁을 거부했다. 으레 김처선에 대한 마음 때문이리라 예상하게 하는 대목이다.

그러나 ‘정인이 있는 것 아니냐’는 성종의 의심을 사면서 한층 공고해졌던 예상은, ‘임금을 위해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윤소화의 똑 부러진 해명으로 금세 무색해지고 말았다.
  
좀체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윤소화의 마음은 내관이 된 김처선과 재회한 자리에서도 도드라졌다. 상상해보자. 사랑하는, 아니 조금은 호감을 느끼는 남성이 어느 날 갑자기 ‘내시’가 돼 나타났다면. 아무리 그들이 “플라토닉러브”라 하더라도 그녀처럼 무덤덤할 순 없으리라. 그녀는 그저 “네가 곁에 있어서, 참 다행”이라고 여겼다.
 

물론 이후 윤소화는 죽을 고비를 맞은 김처선을 찾아 눈물로 회생을 바라며 애틋한 감정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10회. 그동안은 그런 모습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이따금 위기에 처한 김처선을 ‘마땅히’ 왕에게 구명할 뿐. 안 그래도 모호했던 그녀의 감정이 더욱 분간하기 어려워진 것이다.  

전반적으로 김처선에 대한 윤소화의 마음은 기획 당시보다 ‘절제’된 듯하다. <왕과 나> 홈페이지에 실린 ‘등장인물’ 소개가 드라마의 내용과 미미하게나마 차이를 보이는 게 이를 방증한다. 이를테면, 그녀가 합궁을 거부한 이유를 김처선에 대한 ‘알 수 없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나와 있는 것이다.  

시청자가 느끼는 것과는 다소 차이가 있는 설명이다. 이 역시 '왕의 여자'라는 그녀의 본분과 '충신'이라는 김처선의 본분을 고려하면 그녀의 사랑까지 뚜렷이 표현하는 데 제약이 뒤따랐기 때문일 터.

‘충신 김처선’과 ‘로맨티시스트 김처선’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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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BS 대하사극 <왕과 나> 홈페이지의 등장인물 소개 중 윤소화(구혜선 분). ⓒ SBS

그러니 적어도 윤소화가 후궁이 된 뒤론 멜로 라인은 온전히 김처선의 몫이 됐다. 짝사랑은 아닌지 의심스러워진 그의 어깨가 더 무거워진 셈이다. 

하지만 이때부터 김처선의 사랑 역시 엿보기가 쉽지 않았다. 극은 그가 정식 내관이 되면서부터 또 다른 모습인 ‘충신 김처선’을 위주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최근에는 성종의 진의를 이해하고 분열에 빠진 내시부를 구하고자 앞장서는 충신의 모습이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물론 김처선은 의도한 대로 먼발치서 윤소화를 바라보며 지켜주고 있다. 다만, 이때 간혹 이런 ‘로맨티시스트 김처선’과 ‘충신 김처선’의 정체성이 혼동되는 때도 있다.  

‘늘 그랬듯’ 김처선은 위기에 처한 윤소화를 구하고자 양아버지인 조치겸에게 도움을 청하곤 한다. 내관이 되기 전과 달리 “내시의 본분”을 운운하면서 말이다. ‘로맨티시스트 김처선’다운 행동과 ‘충신 김처선’다운 말이 겹쳐 보이는 부분이다.  

이를테면, 중전 책봉이 그랬다. 조치겸은 성종이 친정을 펼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가문의 윤씨를 추천했지만, 김처선은 임금의 뜻을 받드는 게 “내시의 본분”이라며 윤소화를 책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충신 김처선’의 철학이라 볼 수도 있겠지만, 윤소화를 위한 ‘로맨티시스트 김처선’의 마음도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다. 

그런데 앞으로는 ‘로맨티시스트 김처선’과 ‘충신 김처선’ 사이의 충돌이 전면에 등장할 것이다. 결국 그는 성종으로부터 사약을 받는 윤소화(폐비윤씨)를 지켜봐야만 하는 운명. 아마도 윤소화가 폐비를 당하는 과정에서부터 그녀의 아들로 자신이 충성으로 모신 연산군에게 죽임을 당할 때까지, 사랑과 충성 사이 갈등하는 김처선의 모습이 세밀하게 그릴 것으로 보인다. 

플라토닉러브는 역시 어려운 것인가. 비극적 사랑의 종착역을 앞뒀기에 김처선과 윤소화의 멜로 라인은 어쩐지 더 아쉽다. 그래도 '어릴 적 동무'와는 구분돼야 하지 않을까.
 
이덕원

- 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 기사 보기]

  1. Commented by Favicon of http://www.pandawill.com/computer-laptops-c175/cooler-cooling-fan-c240.html BlogIcon laptop cooling pad at 2011/10/08 11:31

    일년이 걸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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