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과 사랑, 그 '달콤'한 욕망의 다른 빛깔

r e v i e w 2008/09/02 20:43 posted by 곱씹다

고층 빌딩 위에서 굽어보는 카메라의 시선이 어둑한 거리의 한 지점에 살며시 닿는다. 뒤이어 다가간 그곳에서는 자살한 한 남자의 흔적이 ‘깨끗이’ 씻기고 있다. MBC 드라마 <달콤한 인생>은 첫 회부터 주인공 준수(이동욱)의 추락사를 밝히면서 시작한다. 자연스레 나머지 내용은 6개월 전으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자살하기까지 그의 삶이다. “세상에 정말 사랑 같은 게 있는 걸까? 목숨을 걸고 지킬 만한 가치가 있는, 그런 순수한 사랑.” 요컨대 그에게 그 기간은 자신이 던졌던 물음에 대한 답을 체득한, ‘유일’한 시간이었다. 


돈에서 비롯된 ‘미스터리’를 장애물로 세워 빛내는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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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인생>은 공통적으로 ‘달콤’한 욕망의 대상인 돈과 사랑의 전혀 다른 빛깔을 다룬다. 물론 이는 멜로드라마에서 한 몸처럼 자주 쓰이는 소재다. 욕망의 갈림길 앞에 선 인물이야말로 인간의 본성과 관계를 고스란히 드러내기 때문이다. 더구나 물질 만능주의가 팽배한 오늘날, 멜로드라마에서 “사랑이 밥 먹여 주냐”는 현실론과 “김중배의 다이아몬드가 그리도 좋더냐”는 이상론의 갈등은 불가피할 터이다. 그러나 이 드라마는 익숙한 소재를 다루되, 낯선 방식을 택한다. 통속적인 양자택일 구도를 전면에 설정하기보다는, 돈에서 비롯된 ‘미스터리’를 장애물로 세워 사랑의 가치를 빛내는 식이다. 그래서 미스터리를 제외하면 언뜻 르네 끌레망의 <태양은 가득히>가 비치기도 하지만, 이 드라마는 돈보다 ‘사랑’에 방점을 찍는다. 

미스터리는 친구 성구(정겨운)의 ‘추락사’와 준수의 연관성 여부다. 준수는 성구의 온갖 멸시에 열등감을 느끼면서도 돈 때문에 뒤치다꺼리를 하며 기생하던 존재. 그가 수상한 건 함께 간 오타루의 설산에서 성구가 죽었는데도, 사실을 숨긴 채 친구의 부를 대신 누린다는 점이다. 덕분에 표면적으로는 성구가 된 듯 보이지만, 그 이면엔 시나브로 조여 오는 죄책감에 성구에게서 벗어나지 못한다. 결국 그는 성구의 시체를 찾으러 다시 북해도로 향하고 여기서 우연히 ‘멜로’가 시작된다. 심지어 상대는 친구 다애와 불륜 관계인 동원(정보석)의 아내 혜진(오연수). 산산이 부서질 것 같았던 두 사람은 서로를 “세상과 연결해주는 유일한 끈”으로 여기고 운명적인 사랑에 빠지고 만다. 그래서 진짜 문제는 이때부터다. 그는 처음으로 간절히 살고 싶어지지만, 자신을 의심하는 성구의 아버지 강 회장(조경환)으로 인해 여의치 않은 것이다.


죄책감으로부터 벗어나 ‘깨끗’해지기 위한 선택 

 

그렇다한들, 종국에 준수는 자살을 택해야만 했을까? 아닌 게 아니라 사실만 놓고 봤을 때 그는 충분히 살길을 찾을 수 있었다. 마땅한 증거도 없었을뿐더러, 성구의 추락사를 조사한 퇴직 형사 박병식(백일섭)도 결과적으로는 되레 그의 결백을 뒷받침했기 때문이다. 범죄 여부를 떠나 혜진과 도피를 시도하거나, 하물며 죽였더라도 자수해서 광명을 찾는 방법이 있었던 셈이다. 그러나 알다시피 준수는 기어이 자살을 택한다. 그리고 그 이유는 극중 가장 흥미로운 관계인 준수와 다애 사이에서 찾을 수 있다. 명품으로 남에게 뽐내는 낙에 사는 다애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면서도 동원의 돈에 길들여져 헤어 나오지 못하는 인물. 이런 다애에 대한 준수의 마음은 악어새가 악어새를 보는 연민이다. 무의미한 욕망의 덫에 걸려 정작 유의미한 욕망을 지킬 수 없는 상황에 놓인 준수는, 다애에게 자신처럼 되기 전에 다시 시작하라고 충고한다. 이에 “사람도 빨래처럼 깨끗이 빨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다애의 푸념은 그의 것이기도 했다. 

 

이 드라마는 준수의 범죄 여부를 명확히 밝히지 않는다. 그러거나 말거나 사실 밖의 진실은 준수가 열등감에 성구를 죽이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결과적으로 성구의 손을 놓았다고 괴롭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준수가 돈이라는 무의미한 욕망으로 상징되는 성구, 즉 죄책감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은 ‘생의 소멸’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때 전반적으로 인물들을 관조하는 듯했던 카메라는 준수를 채근하기 시작한다. 첫 회의 첫 숏이었던 ‘부감숏’이 드라마 후반 빈번하게 등장하는 것이다. 준수 또한 고층 빌딩의 초고층 오피스텔 아래로 화분과 휴대전화를 던지고, 급기야는 몸까지 던지고 만다. 여기서 부감숏은 돈으로 쌓아올린 욕망의 탑 위에서 불안하게 서 있는 준수에 대한 메타포일 터이다. 마침내 준수는 제자리로 돌아감으로써, 또 마찬가지로 하강하는 빗줄기와 물줄기를 씻김으로써 비로소 깨끗해지는 것이다. 
 

문학적 드라마의 참신함, 플래시백의 과용


한 편의 소설을 보는 것 같았던 문학적 드라마 <달콤한 인생>의 시도는 일정 부분 유효했다.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지는 못했더라도 마니아층을 뚜렷하게 형성한 덕분이다. 이는 도저한 서사성에 대한 수요가 분명히 존재함을 드러낸 것이다. 그러나 문어체 대사와 내레이션 그리고 의식의 흐름 같은 문학적 특징은 드라마와의 간극을 보인 부분이기도 하다. 특히 미스터리 플롯이라곤 해도 시점은 지나치게 혼란스러웠다. 6개월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 뒤 다시 인물들의 플래시백이 번갈아 뒤섞이는 탓이다. 인물의 시점에 따르는 덕에 감정을 충실히 뽑아내는 건 분명하지만, 많은 시청자를 붙잡기 위해서는 좀 더 친절해질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왜 자꾸 선을 그으려고 하세요. 여기서 여기까지는 여기고 여기서부터 여기까지 있었던 일은 그저 과거의 한 지점이고, 뭐 그런 식으로 선을 그을 필요는 없잖아요. 그냥 지금 감정에 충실하면 안돼요?” 그래서 혜진에게 던진 준수의 대사는 이 드라마의 소박한 바람처럼 들린다.


<달콤한 인생>을 보는 내내 마음 한구석이 먹먹했던 건, 우리가 살아가는 드라마 밖 세상도 비슷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준수의 대사대로 “온 세상이 싸구려 욕망으로 넘쳐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드라마는 준수의 물음에 답하는 다애의 대사를 빌려 희망의 손짓을 한다. “그런 걸 왜 세상에서 구해? 그런 건 네 마음속에 있는 거라고.”


이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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