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학교 앞을 지나던 길에 돈가스를 사서 집으로 왔다. 늦은 저녁 시간, 출출해질 밤을 대비해 산 간식이기도 했지만, 돈가스는 우리 어머니가 가장 좋아하시는 음식 중 하나기 때문이었다. 사실 어머니는 넉넉한 양에 구색을 다 갖추고도 3,500원이라는 그리 비싸지 않은 가격에 먹을 수 있는 그곳의 돈가스만을 맛있다고 하신다.
늘 그렇듯 밤참은 소주 안주가 됐고 모처럼 가족들은 모여앉아 술도 마음도 나눴다. 그런데 돈가스를 맛있게 드시는 어머니를 보는데 문득 가슴 한구석에 알알이 박혀있던 옛 기억이 떠올랐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어머니가 돈가스를 싫어하시던 때가 고스란히 떠올랐다.
어머니가 돈가스를 싫어하시던 시절
십수 년 전쯤, 나는 며칠 동안 어머니에게 떼를 쓴 끝에 돈가스를 먹으러 갔다. 그런데 예전과 달리 어머니는 돈가스를 하나만 시키고 드시지 않았다. 열 살가량 어린아이였지만 그래도 전교에서 내로라하는 덩치여서 웬만한 성인 목은 족히 먹어치웠는데도 말이다.
결국, 돈가스는 온전히 내 몫이었다. 흐릿한 기억이지만 어머니는 허겁지겁 먹는 아들의 권유에도 전혀 입을 대지 않으셨다. 지금은 누구보다 돈가스를 좋아하시는 어머니가 한때는 그렇게 돈가스를 싫어하셨던 것이다.
당시 어머니는 돈가스를 싫어하실 수밖에 없었다. 아니, 싫어하시는 척할 수밖에 없었다는 게 맞는 말이겠다. 사실 그 무렵 아버지가 하시던 사업이 잘못돼 생활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날 이후 나는 하교 길에 친구들과 방방을 타는 대신 학교 앞에서 지키고 있던 아저씨 아줌마를 시장 골목골목을 돌며 따돌리는 놀이를 했고, 한겨울 연탄을 때지 못해 춥다고 울며불며 잠 못 이루었다. 그리고 그렇게 울던 아이를 어머니는 말 없이 안아주셨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했던 된장죽
무엇보다 철없던 어린아이에게 가장 크게 다가온 어려움은 이제는 아무리 떼를 써도 돈가스는커녕 그 어떤 맛있는 음식도 먹을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매일 정체를 알 수 없는 죽을 먹어야 했고, 된장을 풀고 배추를 넣고 끌인 게 전부인 그 죽이 어린아이는 세상에서 제일 싫었다.
그리고 십여 년이 지난 지금 아버지와 어머니의 노력으로 어머니는 돈가스를 다시 좋아하시게 됐고, 나는 다시 반찬투정을 한다. 그동안 어릴 적 먹던 된장죽은 정말이지 생각조차 하기 싫었다. 그리고 어머니도 좀처럼 된장죽을 드시지 않았다.
돈가스와 소주를 다 비우고 아버지와 어머니도 그만큼 얼큰하게 취하셨을 즈음 나는 다짜고짜 어머니에게 조만간 된장죽을 해먹자고 졸랐다. 어머니는 뜻밖이라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리셨지만 정말 된장죽이 먹고 싶었다. 그리고 그 사이 내 입맛이 변해서인지, 상황이 달라져서인지 십여 년 만에 먹은 된장죽의 맛은 나름 별미였다.
된장죽 한 대접을 다 비우고, 문득 자장면이 싫다고 하셨다는 유행가 노랫말 속 어머니는 우리 어머니들의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덕원
- 덧붙이는 글 -
2006년 9월16일 작성.
<미디어다음> '블로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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