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 좋은 봄날이면 공연히 마음이 설렌다. 그래서 솔로들은 이성친구가 없음에 탄식하고 커플들은 손만 잡고 길을 걸어도 웃음이 절로 난다.
멀리서 보이는 그녀인 듯한 모습에 처음 설레고, 함께 영화를 보며 울고 웃고, 함께 밥을 먹으며 이런 저런 이야기 나누고, 속상한 마음에 술친구가 돼 다독여 주고…. 어찌 행복하지 않을까.
그러나 유행에는 민감하면서 시대흐름에는 뒤처진 것일까? 아직까지 일부 남성들의 머릿속에는 '보수적인 사고'가 잔재해서 즐겁기만 해야 할 데이트가 '부담'스럽기도 하다.
'영화 보고 밥 먹고 차 마시고'
"오늘은 뭐 하지?" 영화 보고 밥 먹고 차 마시기. 커플들의 가장 전형적인 '데이트 코스'다. 그러나 매번 같아서야 되겠는가. 여자들은 준비된 '이색' 데이트를 좋아한다. 심리적으로 남자들보다 '색다르고 독특한 것'에 끌리는 여성들, 그렇다면 남성들은 데이트도 사전에 계획해야 한다.
언젠가 한 친구 말하기를 남자친구랑 헤어지고 나서 생각해보니 소주방 밖에 기억나는 게 없더란다. 이래서는 안 되기 때문에 남자들은 교제 중반에 이르면 데이트 코스의 압박에 시달린다. "그녀랑 놀이동산을 갈까?, 아니야 바다를 보러 갈까??, 아 뭐 하지???" 여자친구와의 교제 초반에는 하지 않던 고민들이 이어진다.
"음……. 그럼 오늘은 그녀가 좋아하는 놀이동산을 가고, 주말에 영화 보고, 다음 주에 바다로 놀라가야겠다."
'총알이 있어야 총을 쏜다'
'총알'이 없으면 '총'을 쏠 수 없다. 마찬가지로 '놀이동산'도, '영화'도, '바다'도 '돈'이 있어야 가능하다. "그럼 오늘은 그냥 영화보고, 놀이동산은 다음 달에, 바다는 다 다음달에……"
남녀가 평등하니 연애를 할 때도 '더치페이'가 자연스러워졌다고 말하지만 아직까지 일부 남성들은 여자친구와의 '더치페이'는 '더티페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연상'보다 '동갑'을 '동갑'보다 '연하'를 사귈 경우 이러한 '압박'은 더욱 심하다.
한 친구가 이런 일부 남성 중 한 명인 선배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친구 선배의 연애신조 중 첫 번째가 3만원이 없으면 이성을 만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남녀가 만나서 손만 꽉 쥔 채 길을 걸으며 서로가 '내 사람'임을 자랑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한데 조금 심하다 싶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하루 종일 손잡고 걷기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더군다나 높은 굽의 구두까지 신은 여자친구라면 더욱.
실제로 나는 친구 선배이야기를 공감한 일이 있었다. 여느 때 그녀에게 먼저 만나자는 연락이 오면 그녀에게 잘 보이기 위해 뭘 입을까 즐거운 고민을 했겠지만 그 날은 달랐다. 지갑을 톡톡 털어 보니 손에 쥔 것은 시퍼런 지폐 두 장. 잠깐의 망설임 끝에 밥이나 먹자 생각하고 집을 나섰다. 하지만 결국 데이트가 끝나고 집에 돌아오는 내 손목에는 애지중지 아끼던 시계가 없었다.
사실 밥 먹고 팥빙수를 먹는 시나리오까지는 좋았다.
"한 여름 도보로 한 시간 가까이 걸리는 그녀의 집에 남은 돈으로 택시를 타고 바래다준다. 그리고 나는 까짓 한 시간 운동 삼아 집으로 가면 되겠다."
하지만 돌발 상황으로 내 지갑사정을 알 리 없는 그녀가 영화 보러 가자는 것이 아니겠는가. 결국 내 손목시계는 영화비 몫으로 '전당포'도 아닌 'DVD방 아르바이트생'에게 포로 아닌 포로로 맡겨졌다. 집으로 돌아오며 그래도 그 난감한 상황을 그녀가 눈치 채지 못했다는 것에 '안도'의 숨을 쉬었다.
그 날 이후 친구 선배의 연애 신조는 내 연애신조가 되었다. 그래서 끼니는 거르고, 먼 거리도 걸으며, '만원의 행복 체험하느냐'는 이야기까지 들으면서 데이트 비용을 마련해야 했다.
'대화가 필요해'
일 년 여간 솔로로 지내며 '외로움'에 몸서리치고, '그리움'에 애꿎은 술잔만 부여잡던 내 친구에게 '봄'과 함께 '봄처녀'가 찾아오셨다. 내색하지 않지만 그래도 행복함이 묻어나는 친구 녀석도 벌써부터 앞서 언급한 데이트 코스와 비용의 '압박'을 느끼는 듯하다.
사람과 사람의 모든 만남에, 특히 '가깝고도 가까워야 할' 이성친구와의 만남에 진실한 '대화'보다 중요한 것이 있겠는가. 남녀를 불문하고 색다른 데이트 코스 준비를 위한 부담도 부실한 지갑사정도 서로가 대화를 통해 함께 해야 한다. 지금 당신 앞의 그녀, 또는 그와 '함께'라는 사실만으로 행복하기 위해.
이덕원
- 덧붙이는 글 -
2006년 4월5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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