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초 방송을 보니 무라카미 하루키를 몰라 곤혹을 치르더군요. 취업 준비 하랴 과외 하랴, 정신없죠? 에쿠니 가오리나 오쿠다 히데오가 더 익숙한 세대기도 할 테고요. 하긴 <상실의 시대>로 일찌감치 국내에서 팬덤을 형성한 하루키지만, 21세기에 여전히 하루키를 읽는다는 건 얼마간 ‘길티 플레져’였는지도 몰라요. 일부 악의적 비판을 걷어 낸다손 쳐도, 주력하는 장편에서 그다지 성장하지 못했던 건 사실이거든요.
반면 어느덧 생활인으로서 현실의 쳇바퀴에 오른 독자에게 하루키의 소설 속 심드렁한 주인공의 삶은, 출근 전쟁을 치르는 만원 버스에서 듣는 “눈이 참 예쁘게 오네요”라는 라디오 디제이의 멘트만큼이나 동떨어진 것이었고요. 물론 새로운 시도가 없었던 건 아니에요. <해변의 카프카>를 기점으로 좀 더 깊고 너른 세계로 나아가려고 했었죠. 여러모로 설익은 탓에 되레 한계만 드러냈지만요.
그런데도 하루키의 <1Q84>를 권하는 건, 그것도 다 이 책을 내놓기 전까지의 소리기 때문이에요. <1Q84>에서 하루키는 문학 장르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일본의 사회 병리를 두루 건드리는가 하면, 치밀한 구성과 도저한 서사성으로 엄청난 흡인력을 발휘하거든요.
의미심장한 건 그러면서도 자신의 스타일을 능란하게 밀어붙인다는 거고요. 요컨대 특유의 메타포와 더불어 댄디즘이에요. 교향곡과 재즈, 소설, 여행기가 예의 오마주처럼 등장하고 옷차림과 요리, 심지어 성애까지 노골적으로 묘사하는 걸 잊지 않는 거죠.
<1Q84>는 아오마메와 덴고의 아련한 첫사랑 이야기이자 두 사람이 ‘1Q84’라는 의문의 세계에 들어선 뒤 겪는 판타지예요. 위험한 임무를 맡게 되는 킬러 아오마메의 이야기와 한 소녀를 만나면서 그로테스크한 사건에 휘말리는 소설가 지망생 덴고의 이야기가 장을 번갈아 나오는 식이고요.
결국 하루키는 현실과 판타지, 체제와 반체제가 기실 뒤틀려 연결되는 ‘뫼비우스의 띠’ 같다고 말하는 듯해요. 그럼 아오마메와 덴고는 그 이음매를 찾아 합일될 수 있을까요? 지훈 씨랑 함께 올 여름 출간될 3권의 답을 기다리는 것도 재밌을 거예요.
이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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